[하재봉의 영화사냥]브로크백 마운틴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최다 후보작으로 지명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의외로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이다. 의외인 것은, 이안 감독이 동성애 소재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런 영화가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최다 후보작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그만큼 사라져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진흙을 빚어 새로운 형체를 만드는 조물주의 손처럼, 소재를 장악하고 그것을 주물러서 자신이 원하는 형상으로 빚어내는 이안 감독의 연출력이 절정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안 감독은 뉴욕 맨하탄의 뒷골목이나 LA의 공중화장실이 아니라, 가장 마초적인 텍사스 목장에서 동성애를 이야기하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치기 목동으로 만난 두 청년 애니스(히스 래저 분)와 잭(제이크 질렌할 분). 두 사람의 이십년 동안의 사랑 이야기가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욕정이 아니라 사랑이다.

8월이지만 산꼭대기에는 아직도 눈이 덮인 록키 산맥의 브로크백 마운틴. 그곳의 양 방목장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만난 두 사람은 함께 천막 속에서 생활하며 양을 관리한다.

그 뒤 목장을 떠난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결혼하고 평범한 농부로 살아가던 애니스에 비해, 잭은 자동차 대리점을 하는 장인을 만나 부유하게 생활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잊지 못한다. 그 이유는 브로크벡 마운틴에서의 생활 도중 동성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게이가 아니다. 일종의 바이 섹슈얼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데, 왜냐면 그 경험 이전 애니스는 마초적인 텍사스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잭과 성경험을 한 것은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일이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잭을 거부하지 않는 미묘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영화는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결혼하고 각자 가정을 갖지만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가는 두 사람의 20년 사랑 이야기가 작품 안에 매우 깔끔하게 각색되어 있다. 특히 영화는 사람들 사이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영상문법으로 압축하고 생략하거나 비약하면서 속도감을 갖는다.

이안 감독의 연출력은 인간 내면을 깊이 드러내는 놀라운 지적 응시와, 그것을 울림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절제의 미학에 있다. 여기에 영화는 수다스럽지 않으면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담백하면서도 처절하게 파도치는 감정의 무늬를 드러내고 있다. 감독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그것의 성적 접근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의 교류다. 애니스와 잭이 결혼생활 도중에도 가끔씩 만남을 지속하는 것은,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수한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영혼에 박힌 상처를 치유한다.

‘아이스 스톰’으로 미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삶의 권태를 처절하게 묘사한 이안 감독은 동성애자라고 소문이 나면 은밀하게 살해될 정도로 보수적인 지역에서, 서로의 삶의 상처를 위로해주며 은밀한 만남을 계속하는 두 남자의 사랑을 위험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