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 달리 예년을 웃도는 완성품(세트) 업체의 가격 인하 공세는 가뜩이나 경영난에 처해 있는 부품 업계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작년 하반기부터 몰려온 환율·유가·원자재 가격 인상의 3중고로 인해 휘청거리는 부품 업계에 닥친 판가 인하 공세는 자칫 국내 부품 업계의 기반을 흔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기업 비상 경영과 중국의 성장이 배경=예상을 뛰어넘는 완성품(세트) 업체들의 가격 인하 공세는 계속된 위기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예년에 뒤지지 않은 실적을 2005년에 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가 절감이 중요하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작용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몇 년 사이에 외국 경쟁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이뤄냈지만 이를 계속 이어가지 못하면 선두권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경영진의 공통된 생각”이라며 “뼈를 깎는 내부 혁신이 가장 중요하지만 협력 업체의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몇 년 사이에 중국 부품 업체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가격뿐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국내 부품 업체를 위협하게 된 현실도 완성품(세트) 업체의 가격 인하 공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핵심 부품은 아직 2∼3년의 기술 격차가 있지만 범용 부품은 기술 격차가 사실상 없어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중소업체 사장은 “납기 대응력을 제외하면 중국 PCB 업체도 국내 업체에 밀리지 않는다”며 “중국 업체가 제안한 가격을 세트 업체가 거론하며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반박할 근거가 부족해 난처할 따름”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떠넘기기식 해결은 무책임=완성품(세트) 업체의 가격 인하 공세는 매년 반복됐지만 올해는 그 파장이 다르다. 작년 초 큰 폭의 가격 인하를 경험한 부품 업계가 1년 내내 환율 및 유가 인상에다 원자재가 급등을 겪으며 가격 인하 요구를 받아들일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일부 선두 업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품 업체가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도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아서다.
이러한 동정론과 달리 일부에서는 대기업인 완성품(세트) 업체가 원가 절감의 책임을 중소기업인 부품 업계에 떠넘긴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김동철 부품소재진흥원장은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매년 증가하는 데 비해 중소기업은 반대 상황”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은 공급 가격 인상 속도가 제조 원가 상승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98년 6.5%에서 2003년 8.2%로 높아진 데 비해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5.2%에서 4.6%로 감소했다. 또 2003년을 기준으로 제조 원가가 10% 이상 높아진 업체는 61%인 반면 납품 단가가 10% 이상 올라간 업체는 24%에 불과하다.
모 부품 업체 사장은 “사회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부품 중소기업은 종속과 불공정 거래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부품 업계가 무너지면 완성품(세트) 업체도 조만간 똑같이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