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도 10억분의 1수준으로 물질 성분을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2010년까지 170억원을 투자해 구축할 6메가볼트(㎹)급 중형이온빔가속기를 설명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최원국 박사 목소리로부터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 떨림은 과학기술자로서 국내 과학계의 신천지인 ‘농도 10억분의 1로 물질 속 들여다보기’에 대한 ‘기대’이자 ‘흥분’의 발로였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모양, 즉 구조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성분도 볼 수 있다고? 최 박사는 “특정 물질에 어떤 성분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물질 속에 특정 성분이 10억개 중에 1개가 들어있는 것을 가려낼 수 있으니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최 박사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이 보유한 3㎹ 이하 이온빔가속기를 이용해 물질 속을 농도 100만분의 1수준에서 들여다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며 “2010년까지 6㎹급 중형이온빔가속기 구축이 완료되면 물질을 파괴하지 않고도 10억분의 1수준에서 성분을 분석하고, 구조를 파악하며, 3차원으로 가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빔이 물질을 투과하는 깊이도 10나노미터(㎚)대를 구분할 수 있는 데서 1㎚대로 깊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물질을 1㎚를 가려내는 깊이, 10억분의 1을 가려내는 농도는 대략 ‘대기권 밖에서 지구 안 구슬을 가려내는 정도’와 비슷하다. 가속기를 설치할 공간만도 최소 600평 이상이다. 그만큼 ‘물질의 근본’에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이처럼 흥미로운 일을 우리 기술로 처음부터 끝까지 매듭짓지 못하고, 알맹이라고 할 ‘가속기’를 네덜란드 하이볼티지엔지니어(HVEE), 미국 엔이씨(NEC)로부터 사들여와야 한다는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