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기에 우리 회사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이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우회상장을 권해왔고 인수 대상 기업도 소개해줬다.”
지난해 부실 상장기업 A사를 인수해 코스닥에 우회상장한 B사 대표는 인수합병이 마무리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A사와의 연계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A사와는 사업분야가 상이해 사실상 합병 시너지효과가 없으며, 1∼2년 정도 더 기다려 정식으로 코스닥 상장절차를 밟으려 했으나 투자기관에 이끌려 우회상장을 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B사의 설명이 과장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벤처캐피털이 투자회수 방편으로 우회상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출구가 없다=벤처캐피털이 시장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우회상장에 매달리는 것은 그만큼 투자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벤처캐피털의 투자 회수는 기업공개(IPO)에 의존하고 있고 그나마 코스닥시장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코스닥은 지난해 신규 상장기업의 평균 상장소요기간이 8.96년에 달해 평균 10년 가량 유지되는 미국 벤처펀드와 달리 5년 정도의 존속기간을 갖는 국내 벤처펀드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에 따라 벤처캐피털이 보다 원활한 투자 회수를 위해 우회상장에 시선을 돌리면서 관련 사례가 급증했고, 급기야 지난달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우회상장 실태조사를 통해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단속 의사를 천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순환투자 힘들어=벤처캐피털이 다양한 투자 회수 방법을 갖지 못하면서 벤처투자의 순환도 어려워졌다.
벤처펀드가 유망기업을 한발 앞서 발굴하기보다는 단기간에 상장여건을 갖출 수 있는 안정적인 벤처에 투자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투자 불균형을 가져왔다.
지난해 벤처캐피털의 신규 투자는 코스닥활성화 대책에 힘입어 지난 2000년 이후 5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업력 3년 이하 기업에 대한 투자비율은 20.9%로 전년대비 7.8%P 감소했다. 자본금 20억 이하 중소규모 업체 투자비율도 같은 기간 1.2%P 낮아졌다. 반면 업력 7년 이상 벤처와 자본금 20억원 이상 벤처 투자비율은 각각 7.5%P, 1.2%P씩 증가했다.
◇회수시장 다양화 시급=투자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벤처캐피털이 기존 코스닥 IPO 외에도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최근 6년간 신규 투자추이를 살펴보면 코스닥이 활황이었던 2000년과 지난해에나 벤처캐피털의 신규 투자가 활기를 보였을 뿐 나머지 기간에는 부진한 모습이었다.
우선 현재 10%대에 머물고 있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자금회수 비중을 늘릴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유연화할 필요성이 있다. 우회상장에 대해서도 무조건 규제할 것이 아니라 부실 상장기업을 우량 장외기업이 인수해 정상화시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아직 IPO가 주요 투자회수 방법인 만큼 사실상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프리보드를 활성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벤처캐피탈협회 김형수 이사는 “코스닥 상장기간이 길어지고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최근에는 M&A를 통한 투자회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밝히고 “프리보드가 비상장 벤처주식의 거래시장으로 자리매김한다면 투자자금 선순환 구조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전자신문, new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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