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난 세상]고범규 인티그런트 사장

[CEO가 만난 세상]고범규 인티그런트 사장

 일에는 단계가 있다

 2년 전이다. 고범규 사장은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의 미래를 믿고 투자할 투자자를 찾아 혈혈단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과 같은 모바일TV 시장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했고, 시장이 열릴 때까지 칩 개발을 뒷받침해줄 투자자가 절실했다. 투자자를 찾기 위해 차를 빌려 미국 곳곳을 누볐으며, 관심을 보이는 곳은 몇번이고 찾아갔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이제 개발에 첫발을 내디딘 회사에 신뢰를 보내지 않았으나 오히려 미국 인텔과 일본 자프코 등 해외 유명기업이 투자를 결정했다. 투자 유치 100억원. 결국 해냈다는 뿌듯함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회사로 돌아와보니 회사 통장에 100억원이라는 숫자가 찍힌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개발 과제와 시장을 개척해야 할 사명은 여전했던 것이다. ‘헝그리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고범규 사장은 처음 DMB 튜너 RF칩을 개발했을 때나 투자를 유치받았을 때도 성공했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풀어가야할 숙제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숙제를 완성하기 위해 한 발짝부터 착실하게 그리고 끈기있게 내디뎠다. 고 사장은 일명 ‘대박’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에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를 충실히 딛고 올라서야만 튼튼하면서도 끊임없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을 이끄는 CEO의 마인드라고는 보기 힘든 부분이다.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에 최근 들어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인티그런트의 RF칩이 한 일본업체의 모바일방송(ISDB-T)용 단말기에 ‘디자인-윈’하게 됐다는 것. 2년 반 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고범규 사장은 “일본은 부품에 자부심이 강해 수입은 지양하는 편”이라며 “상대를 쉽게 신뢰하지 않은 일본 특성상 시장을 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신뢰를 쌓기 위해 한 걸음씩 밟아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중국이다. 이미 인티그런트는 중국시장을 겨냥한 통합 칩 솔루션을 확보했다. 베이스밴드와 RF를 통합한 것은 물론이고 튜너에 필요한 모든 수동부품을 인티그런트의 시스템인패키지(SiP)로 통합했다. 이 칩 하나로 튜너모듈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제 막 지상파DMB 단말기 개발을 시작한 중국업체가 좋아할 칩인 것은 당연하다. 특별한 RF 기술이 없이도 쉽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은 끝났지만 이제 할 일은 더 많아졌다. 대리점 영업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 이제 지사 설립도 추진해야 한다. 고 사장 자신은 영어, 일본어에 이어 중국어도 배울 계획이다.

고 사장은 “중국 DMB 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올해에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범규 사장의 나이는 서른 여덟. 팹리스 업계 CEO로서는 흔치 않은 30대다. 젊은 나이지만,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욕심보다는 제품 개발부터 고객의 신뢰를 형성하기까지 성실한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이 고 사장이 세상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