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호 창간특집기획](2)불운의 명작들

온라인게임업체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속설이 있다. “잘 만든 작품이라고 반드시 동시접속자수가 높은 것은 아니다.” 패키지 게임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완성도가 높고 무수한 상을 받아도 그것이 곧 판매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실적으로 개발사와 유통사를 좌절케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칭하며 매년 씻김굿을 통해 개발자들의 원한을 위로한다. 그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해외에서 성공했지만 국내에서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을 살펴보자.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서 폭풍같은 인기를 누릴 때 많은 유통사 관계자들은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RTS)의 전성시대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해외 평론가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작품들을 경쟁적으로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홈월드’가 있다. 이 작품은 RTS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 왔다.

2D 일색이었던 RTS 그래픽을 3D로 개발했는데 결코 조잡하지 않았고 매우 뛰어난 시각적인 완성도를 선보였다. 또 3D라는 점을 최대로 활용해 광활하고 고독한 우주를 실제처럼 묘사했다. 여기에 두 종족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춰 유니트 상성관계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전투는 2차원의 평면이 아니라 3차원으로 고려해야 했고 ‘스타크래프트’처럼 물량으로 밀어 붙이는 방식은 결코 통하지 않았다. 이 게임이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때 유저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전문가들도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을 앞서간 이 작품에 경의를 표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결과는 완벽한 참패였다.

이유는 플레이가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너무 어렵다는 것. 또 시스템 사양이 너무 높아 당시 PC방에서 무난히 돌리기가 어려웠다는 것도 원인이었다. ‘홈월드’는 이런 이유로 인해 처참한 참패를 기록했고 고수 사이에서만 인정받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RTS에서 씻김굿을 받아야 할 작품은 또 있다. 케이브독이라는 신생 개발사에서 개발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 저주를 많이 받은 케이스다. ‘스타크래프트’와 유사한 시기에 국내에 선보인 이 작품은 매우 톡특한 게임성을 지녔다. 여러 면에서 타 RTS와 비교가 됐고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 마니아 층을 형성할 정도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수작이었다.

유저들이 외면한 이유는 ‘홈월드’와 다를 바가 없다. 권장 사양이 높았고 조작이 쉽지 않아서. 또 유니트 생산에 제한이 없어 무대포 진격이 가능했던 단점도 작용했다.최근 FPS계는 잘 나가고 있다. ‘스페셜포스’는 지칠줄 모르는 정력을 과시하며 부동의 1위를 차지한 후 롱런하고 있고 ‘서든 어택’이 동접 9만명에 육박하면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국내 유저들은 롤플레잉만 좋아하고 FPS는 소수 마니아만 선호한다는 선입견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입견의 장단에 춤을 춘 작품들이 있으니 ‘언리얼’과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대표적인 예다. ‘언리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창간특대호 전면을 할애해도 모자랄 지경이니 간략하게만 설명하겠다.

 ‘퀘이크’가 FPS의 전설을 남기고 있다면 이에 대항하는 유일한 작품이 ‘언리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게임의 개발자도 라이벌 의식을 지니고 있어 시리즈가 더해질수록 엔진 성능이 향상되고 있다. ‘언리얼’은 FPS를 좋아하는 유저 사이에서도 골수 마니아만 선호하는 작품이다. 해외에서 명성은 ‘퀘이크’와 ‘언리얼’이 비슷한 위치까지 갔다.

그러나 국내는 ‘퀘이크’가 대중적 성공을 거둔 반면 ‘언리얼’은 무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엔 큰 차이가 없는 이 두 작품의 차이는 마케팅과 홍보였다. ‘퀘이크’가 해외의 명성으로 국내에서 인지도를 확보한 것과 비교해 ‘언리얼’은 그저 그런 FPS가 하나 더 나왔다는 인상을 주었고 주얼CD까지 등장하면서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언리얼’의 훌륭함은 최근 국내 개발사들이 이 엔진을 기반으로 온라인게임을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잘 알수 있다.또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저주받은 걸작이라기보단 업체들의 경쟁으로 신세를 망친 사례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멀티플레이 전용 FPS로, 무료로 배포돼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단지 무료라는 점이 아니라 타격감, 그래픽, 맵 밸런스, 총기 밸런스 등 모든 부분이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국내에 상륙해서 엄청난 반향을 보였으나 업체들이 정식 유통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서로 유통권을 따내기 위해 눈꼴 사나운 경쟁를 펼쳤으며 판권을 획득하지 못하자 경쟁사의 서비스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또 FPS 유저를 외면하고 매상 올리기에만 급급해 원성을 들었다. 여기에 스팀이라는 유료 결제 서비스가 시작되자 유저들은 완전히 마음을 정리하고 말았다. 만약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제대로 서비스만 됐다면 아마 현재의 ‘스페셜 포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국내에서 가장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손꼽히는 작품은 단연 ‘화이트데이’다. 이 게임은 이원술 사단이 한국형 호러게임을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완성시킨 명작이다. 당시 개발자들은 불꺼진 학교의 공포를 직접 느끼고 영감을 얻기 위해 새벽에 고등학교를 무단으로 침입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 우울하고 무시무시한 사운드를 실현하기 위해 국보급 가야금 연주자의 도움을 얻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화이트데이’는 유저와 전문가 사이에서 엄청난 호평을 얻었고 10만장은 기본적으로 팔릴 태세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예상과 달리 극히 저조한 실적을 올렸고 와레즈 사이트만 신나고 말았다. 이원술 사장은 와레즈를 이용한 유저들에게 경고의 글을 올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화이트데이’는 총 2만장이 팔렸는데 공식 홈페이지에서 패치를 다운받은 수는 무려 20만건.

공개된 패치 파일은 여러 사이트의 자료실에 등록되기 때문에 실제 ‘화이트데이’를 플레이한 유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원술 사장은 패키지게임에 회의를 느끼고 온라인으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다

<김성진기자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