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뿌리 박힌 삼류 신파의 비극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데이지’는 홍콩 감독 유위강을 불러 암스테르담에서 촬영했다. 이 영화의 사실상 기획자인 정훈탁 싸이더스 HQ 대표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시절부터 자본의 협력을 맺어온 홍콩의 투자가 빌 콩과 함께, 다국적 마케팅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영화를 기획했다.
중심축은 한류 스타 전지현, 그리고 정우성이다. 그들은 이미 각종 CF를 통해 물질적 소비주의 사회의 아이콘을 만들어 왔었다. ‘무간도’의 홍콩 감독 유위강이 연출을 맡고, 장소는 유럽의 암스테르담을 선택했으며 배우들은 한국인이다.
촬영 현장에서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 불어나 독어가 섞여서 진행한다고 국제적 영화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작품은 영화의 그림, 이른바 비쥬얼 효과 면에서는 그림엽서를 보는 듯 아름다운 화면을 얻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어디 영화가 그림만으로 되는 것이던가. 그렇다면 무수히 많은 CF 감독들이 영화로 진출했을 때 백전백승을 거두었을 것이다.
킬러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흔한 소재다. 이 작품에선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혜영(전지현 분)을 사랑하는 프로페셔널 킬러 박의(정우성 분)와 국제 경찰 인터폴 정우(이성재 분)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상투적 소재에 삼각관계를 슬쩍 입혔다. 그러나 삶의 비극적 현실은 어디에서도 묻어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매우 슬픈 이야기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맺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들의 비극적 사랑이 너무나 가식적이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적 마케팅을 기획하고 만들어진 인위적 조작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 너무 강해서 인물들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처럼 안느껴진다. 그들은 마치 허구로 축조된 거짓의 성에 사는 인형들처럼 움직인다.
서사구조는 상업적 흥행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삼류 신파의 멜로 구도를 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즉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현실이 빠져 있다. 현실과 유리된 이야기는 결국 관객들의 정서와 겉돌 수 밖에 없다.
아름다운 그림 엽서 같은 화면들과 심각한 비극적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관객들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한다. 관객들이 앉아 있는 극장 공간과 스크린이 혼연일체가 되는 소통의 순간은 단 일 초도 없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슬픈 죽음이 비극이 아니라, 이것이 비극이다.
매일 4시 15분이 되면 혜영에게 배달되는 데이지꽃. 멋지지 않는가? 그 꽃을 보낸 사람은 결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킬러다. 그는 얼마전 우연히 물에 빠진 혜영을 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광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혜영 앞에 데이지꽃 화분을 든 남자가 나타난다. 국제경찰 정우다. 혜영은 정우가 자신에게 꽃을 보낸 사람인줄 오해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한다. 정우 역시 혜영을 사랑하지만 자신이 꽃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혜영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누어야 하는 킬러와 국제경찰.
이야기는 사뭇 심각하지만, 그것은 화면 속에서나 존재하는 심각함이다. 객석과 스크린 사이는 너무나 멀다. 이것이 실패 요인이다. 겉맛만 잔뜩 들어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이 작품은, 영화의 외피에만 치중할 경우 빚어지는 최악의 비극을 보여준다. 겉모습이 그럴듯 하다고 멋진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을 쳐발라, 방파제를 뚫고 줄줄 새는 물줄기를 막아보려고 해도 진정성이 없으면 조그마한 구멍은 엄청나게 확대되어 결국 방파제는 무너진다.
영화는 다국적 마케팅의 긍정적 상황이 아닌, 최악의 상황을 제시해주고 있다. 영화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화면 안에 미끈하게 배어 있는 기름기가 아니라 그 안에 넘치는 상상력이고 열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