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약속장소인 하얏트 호텔에 20분 먼저 도착했을 때 이미 도착해 그 곳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잠시 짬을 이용해 주변을 걷고 있었다. 평소에도 틈만 나면 자택이 있는 분당 중앙공원을 걷는다고 했다. 그가 즐기는 취미는 여행. 역시 낯선 곳을 걷는 일이다. 그의 인생도 56년 이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95년 이후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연구자로서 또 기업인으로서 중단없이 걸어온 기록이었다.
과학기술의 한 길만을 고수해온 72세의 ‘전 연구인, 현 기업인’.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에게 처음부터 다시 걸음을 걷는다면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를 물었다.
“바이오 산업이죠.” 답이 돌아오는 데는 잠시의 주저함이 없었다.
“정보기술(IT)과 생명기술(BT), 나노기술(NT)의 융합이 새로운 미래 시장을 만들어낼 겁니다. 당장 돈을 벌려면 다른 사업을 해야겠지만 미래를 본다면 바이오를 선택해야 합니다. 미국도 다른 어떤 분야보다 바이오에 더 큰 돈을 쏟아붓고 있어요.”
선배 과학기술인으로서, 그에게 최고과학자 지위를 부여했던 위원회의 현 위원장으로서 황우석 박사의 일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고과학자 선정 프로그램은 전면적으로 개편할 생각입니다. 황 박사의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선진국에서도 예전부터 여러 차례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도 과학자의 연구결과 속이기가 있었어요.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이나 과학기술계 전반이 이 일로 너무 발목 잡히면 안 됩니다.”
임 회장은 국가과학기술위원, 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 등 많은 일을 맡으며 과학기술계를 이끌어 왔다.
특히 그는 미래 제조업의 비전을 제시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지능형생산시스템(IMS) 의장으로서 미래 사회와 제조업의 진화에 대한 전지구적 담론을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 유수의 제조기업은 지속가능한 생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도 IMS의 연구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효율성과 투명성, 안정성을 높이는 공동연구로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우리에겐 고령화·저출산이 문제입니다. 고령 인구에 대한 지속적인 재교육과 함께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결합한 ‘확장된 상품(Extended Product)’을 생산해야죠. 기업은 확장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지배적 상품(Dominant Product)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제조업은 싼 임금을 찾아 글로벌 경영에 매진해온 지 오래다. 미래에 이 땅에서 과연 무엇을 제조할 수 있을까. “대량생산 제품은 인건비가 싼 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 지역의 인건비가 오르면 또 다른 곳으로 가겠죠. 그래서 우리가 지배적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 제품의 가치 중 노동비의 비중이 작아지죠. 그러면 다시 국내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IMS가 논의하는 생산기술의 진화도 이런 추세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글로벌의 문제를 글로벌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 글로벌에 우리의 답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위치와 젊은 세대의 능력을 보면 지금은 우리 유전자가 폭발적으로 발산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야구나 바둑이 세계무대에서 선전하는 걸 보세요. 우리 과학자도 세계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기술은 경제가, 경제는 정치가 뒷받침하는데 정치마저도 사실 2차 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능력만은 인정할 수 있죠. 지금 하는 대로 조금만 지나면 10위권 이내로 충분히 진입할 겁니다. 영어요? 영어도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외국 나가면 ‘과학기술계의 국제 공용어로 말하겠다. 공용어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다’라고 말하곤 해요.(웃음)”
끝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에 대한 임 회장의 생각을 들어봤다.(그는 현재 삼성 임원 중 최고령자다.)
“삼성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만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중소기업과도 협력하고 있고, IT·BT·NT·에너지·메카트로닉스 등에 초점을 맞춘 R&D 리더십도 큽니다. 인류의 기여도를 볼 때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맹인견 육성을 한다든지 기여를 늘리고 있죠. 잡음이나 아쉬움이 아예없는 건 아니지만 기초에 충실한 준비된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사진=정동수기자
임관 회장은 누구?
1934년 개성출생.
서울고 졸업, 서울대 기계공학 3학기 수료.
1960년 노스웨스턴대학원 응용역학 박사
1956∼80년 미국 벤딕스사, IBM, NASA 기술자문
1960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공대 교수
1982∼84년 2대 한국과학기술원장
1992년 아이오와 주립대 의료공학연구소장
1995∼98년 삼성종합기술원장
1999년 現 삼성종합기술원 회장
2001년 現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석좌초빙교수
2003년 現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
2004년 한국과학한림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