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왕의 남자’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초호화 캐스팅도 아니었다. 이 같은 기록을 세운 배경엔 주연배우들의 열연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연극무대에서 이미 검증받은 우수한 시나리오가 그 중심에 있다.
이렇듯 우수한 시나리오는 영화에 혼을 불어넣는다. 마찬가지로 게임에서도 시나리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레이를 하는데 있어 동기부여는 게이머들에게 장시간 게임을 하더라도 쉽게 질리지 않게끔 만든다.
즉 시나리오를 통해 플레이어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한명의 배우가 되어 게임속에서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문에선 ‘대항해시대온라인’이 경쟁작들을 제치고 영광을 차지했다. 온라인화되기전 패키지로도 성공한 작품의 완성도가 높게 평가받았다. 다른 부문에서는 ‘엑스틸’과 ‘테일즈런너’ ‘워록’ 등이 최고의 시나리오로 뽑혔다.
시나리오 부문에서 ‘대항해시대온라인’가 그동안 그래픽과 사운드 부문에서 독주체제를 굳히던 ‘GE’를 두배차이로 제치며 당당히 정상을 차지했다. 총 30명의 심사위원단 중 10명이 선택한 ‘대항해시대온라인’은 우리에게 ‘삼국지’시리지로 유명한 코에이사가 제작한 온라인 게임으로 16세기 전세계적으로 신대륙발견과 함께 일었던 무역과 해상전투를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이미 PC 게임으로 선보였던 작품답게 방대한 맵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기존의 전투중심의 스토리 전개이외에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역은 지루한 사냥에 식상했던 유저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는 평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아쉽게 2위를 차지한 ‘길드워’ 역시 외국산 작품이라는 점이다. 엔씨소프트의 미국내 개발 스튜디오인 아레나 넷에서 개발한 작품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이 전투와 사냥에 중점을 두는 반면 외국산 게임은 주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퀘스트나 미션 중심의 작품이라는 것을 이번 설문에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국내 개발 업체들의 분발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3위는 국내산 ‘GE’가 차지했다. 훌륭한 그래픽과 사운드로 무장해 유저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게임의 성공을 위해선 앞으로 시나리오 부분의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오픈베타 서비스 중인 점을 감안할때 보강될 ‘GE’ 시나리오를 기대해 본다.
장르별로는 FPS 부문에서 ‘워록’이 1위를 차지했다. 기존 FPS에서 보지 못했던 탑승장비나 대규모 전투를 바탕으로 한 게임성에 한편의 전쟁영화를 보는 것 같은 게임 플레이가 경쟁작인 ‘서든어택’을 제친 원인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서든어택’ 역시 10표를 얻어 결코 녹록치 않음을 과시했다. 반면 무응답이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4표나 돼 아직까지 FPS에서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크게 보지 않고 있는 개발자들도 있음을 보여줬다.
캐주얼 부문에서는 ‘엑스틸’이 압도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 메카닉이라는 소재를 선택했고, 각각의 캐릭터에 부여된 상황설정이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과 잘 맞아 떨어졌다는 평이다.
반면 ‘권호’는 격투라는 소재의 참신함에도 불구 2위를 차지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도장 시스템이 도입돼 앞으로 스토리가 보완될 예정이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스포츠와레이싱 부문에서는 ‘테일즈런너’가 무려 17표라는 과반수를 넘는 몰표를 얻으며 정상에 등극했다. 다른 레이싱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차별화된 스토리라인이 크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컴온베이비’는 귀여운 아기들의 레이싱이라는 독특한 스토리로 2위를 차지해 앞으로 펼쳐질 ‘카트라이더’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펼쳐질 레이싱 부문 대전을 예감케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뛰어나도 흥행에 직결되지 못한 작품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대부분의 후보작이 오픈베타중이거나 서비스에 돌입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섣부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아직 국내 유저들은 시나리오 보다 그래픽이나 타격감등을 게임선택에 최우선으로 생각함을 알 수 있었다.
‘WOW’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그런면에서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시나리오 뿐 아니라 그래픽과 사운드 면에서도 이미 검증받은 작품이기에 향후 국내 개발사들은 시나리오 부분에 좀 더 치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중 시나리오가 뛰어나 별도 소설로 발간해도 성공할 것 같은 작품으로는 ‘대항해시대온라인’과 ‘길드워’가 공동 1위를 차지해 외국산 게임의 시나리오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여기에 만화나 영화로 만들어져도 성공할 것 같은 작품에도 외국산 작품 ‘씨티오브히어로(COH)’가 차지해 아직 국내 작품은 시나리오 부문에서 외국산 게임과 큰 격차가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COH’는 미국 마블사의 만화 캐릭터를 그대로 게임속에 녹여내 흡사 만화속 캐릭터를 직접 컨트롤하는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여기에 똑같은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은 유저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물론 빌런과 히어로의 대립구조는 더할 나위없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악당이 되서 영웅을 무찌를 것인가? 아니면 영웅이 되어 악당을 소탕하느냐는 전적으로 유저들의 선택의 몫이다.
앞서의 결과가 나타내듯이 국내 개발자 역시 게임 전문 시나리오 작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28명의 개발자가 응답한 사실은 이같은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비록 국내 작품이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이같은 결과가 그만큼 더 시나리오 부문에 치중하는 기폭제 역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승현기자 mozir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