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가 살아야 e스포츠가 산다"

난관에 봉착한 한국 e스포츠계가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하고 명실상부한 제도권 스포츠중 하나로 제자리를 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몇몇 케이블 방송사들이 중심이 돼 e스포츠를 키워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지만, 방송사간의 과당 경쟁과 수익 우선주의 등으로 e스포츠가 더이상 파행 운영되서는 안된다는게 전문가들은 한결같은 지적이다.

방송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e스포츠계가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선 협회가 조기에 반석위에 오르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한 e스포츠 전문가는 “협회를 e스포츠계가 세운 만큼 이젠 이를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모두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e스포츠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묘안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e스포츠와 흡사한 멘탈 스포츠중 하나인 바둑의 경우 한국기원을 중심으로 별

잡음없이 세계적인 위상을 과시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기원을 축으로 모든 바둑인들이 힘을 합쳐 바둑의 대중화를 이끌었으며, 병역특례 등 선수들의 처우 등 인프라가 탄탄해졌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e스포츠 분야도 차제에 협회에 모든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상태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김진석 과장은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는 협회가 힘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본다”며 “각 e스포츠 추진주체들의 갈들을 조기에 봉합하고 협회가 e스포츠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e스포츠 리그가 협회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협회의 주된 업무는 e스포츠 리그의 관장이다. 하지만 작년 통합리그 외에 개인리그 등 대부분의 대회가 각 방송사가 따로 개최, 협회로 힘이 집중되지 못했다.

협회는 이 때문에 최근 모든 리그를 상설 경기장을 통해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상설경기장을 적극 활용하면서 e스포츠 운영의 중심을 협회로 이관시키겠다는 의도다. 이와함께 그동안 e스포츠를 이끌어 왔던 방송사들이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협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e스포츠 한 관계자는 “협회가 e스포츠 리그 운영의 총괄을 맡아야 이 업계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데 이견을 달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각계 각층이 욕심을 좀 버리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제진수 협회 이사는 “지난해는 협회 활동의 과도기라 할 수 있다”며 “올해는 힘있는 협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회가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할 재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협회의 재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SK텔레콤의 지원. SK는 작년 8억원에 이어 올해 10억원을 협회 재정 비용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이 비용으로는 협회의 완벽한 자립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해 각 구단들로부터 1억원의 운영 기금과 구 SK텔레텍으부터 15억원을 받는 등 1년 예산이 25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이 예산으로 e스포츠 리그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 또 한 곳에서 너무 많은 지원을 받으면 편파적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때문에 협회의 재정 자립을 위해 방송사가 중계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재정적 안정을 바탕으로 협회가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일이 위기에 빠진 e스포츠계를 구할 가장 1차적인 필요조건이라는 얘기이다. 전문가들은 “협회는 특정기업의 것이 아니라 모든 e스포츠인들의 것인만큼 이곳에 힘을 실어주는게 중요하다”면서 “협회를 제도권에 올려놓지 않고는 e스포츠의 제도권 진입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e스포츠를 명실상부한 문화코드로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제도권 안으로 진입시켜 진정한 디지털 스포츠로 육성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제도권 진입은 e스포츠가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프로게이머들의 병역 문제 등 현안 문제를 해결할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를 위해선 주무부처(문화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범 관련 부처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가령 병역특례만해도 그렇다. 최근 ‘e스포츠 상무팀’ 창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소식과 또한 공군에서 게이머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와 e스포츠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이 문제는 문화부, 국방부, 병무청 등 범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인식의 공유와 논의가 이루어져야한다.

‘e스포츠 상무팀’이 창설되면 다른 스포츠처럼 프로리그의 활성화는 물론 e스포츠에 대한 국민 의식이 달라질 것이며, 선수 수급 등 모든 면에서 도움이 클 것이 자명하다. 제도권으로 진입이 그만큼 수월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도 계속 따라줘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축구나 야구 등 오프라인 스포츠처럼 대기업들의 지속적인 투자가 진행돼야 e스포츠도 본격적인 프로리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정부차원의 보다 실질적인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 최근 문화부는 게임산업진흥법에 e스포츠 활성화와 관련된 조항을 삽입, e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업계는 정부가 말뿐이 아니라 시행령 등에 e스포츠의 제도권내 진입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 등을 명시해 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의 e스포츠 인식 전환을 위한 다양한 사업도 정부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e스포츠 상무팀’ 창단이나 e스포츠의 제도권 진입에 아직도 적지않은 국민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를 중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욱 이스케어네트웍스사장은 “e스포츠의 제도권 진입은 e스포츠 활성화는 물론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정부, 업계, 구단, 선수 등 모든 e스포츠인들이 힘을 합쳐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안희찬기자 chani7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