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총장 연임여부 파국으로 치닫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로버트 러플린 총장 연임을 둘러싼 논란이 학과장 전원 보직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하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28일로 예정된 이사회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KAIST 교수협의회와 러플린 총장 측 모두 위상과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교수협의회 총공세=KAIST 교수협의회(회장 윤춘섭 물리학과 교수)와 보직 교수들은 러플린 총장 연임 저지를 위해 연일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학과장 20명은 27일 학과장 회의를 열고 보직을 일괄 사퇴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 22일 KAIST 학부장 4명 중 3명이 보직 사퇴서를 제출한지 만 5일 만이다.

 교수협의회 측은 지난 15일 이미 교수들의 설문 조사 내용을 앞세워 89% 이상이 러플린 총장 연임 계약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지난 24일에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 러플린 총장의 한국 및 KAIST 비하 발언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또 총장 업적 검토 5인 소위원회 앞으로 소위 위원장이 편파적이라며 사퇴를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를 배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러플린 총장 측은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사태 왜 발생했나=작년 초 보직 교수의 사퇴 때부터 러플린 총장에 대한 반발 분위기가 있었으나 러플린 총장이 최근 2년 연임 의사를 나타내며 폭발했다.

 이번 총장-교수협의회 간 갈등은 행정 난맥상과 KAIST의 사립화 및 종합대학 추진 등 두 가지 요인으로 촉발됐다. 여기에 교수 평가 부분도 러플린 총장의 ‘탄핵’ 요인이 됐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교수의 능력을 평가하고 연봉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행정 경험 부족과 독선적인 리더십도 구설에 올라 러플린 총장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28일 결과에 관심 촉각=KAIST 이사회는 28일 총장 업적 평가를 실시했던 5인 소위로부터 결과를 보고받고 최종 방침을 정리한다. 이사회는 지금까지 러플린 총장 연임에 대해 이렇다 할 견해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연임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AIST 측은 이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러플린 총장 측이 공식 대응을 자제하며, 사태의 추이만을 지켜보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선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다만 이사회가 러플린 총장 연임 여부에 대해 의사를 전달해 오면 내달 15일까지 태도를 표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파국 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이른 시일 내 태도 표명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KAIST 관계자는 “이사회나 과기부도 교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어 난감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연임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