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봄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미국 실리콘밸리 아이파크(ipark) 주차장. 자동차 트렁크에서 3개의 노트북을 힘겹게 꺼내는 사람이 있다. 이성희 한컴씽크프리 과장은 지난 주말 내내 4월 선보일 새로운 오피스 서비스를 시험하느라 3대의 노트북과 씨름을 했다. 윈도·리눅스·매킨토시 등 다양한 운용체계(OS) 환경에서 웹 기반 오피스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출근하는 길이다.
세계적 IT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한가운데. 세계 최대 SW시장인 미국 시장에 태극기를 꽂으려는 한국 SW기업들이 24시간 시장 개척에 강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최근 국산 SW기업들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 시장은 우리에게 높은 벽으로 남아있다. 이 장벽을 뛰어 넘어 당당히 글로벌 SW 기업이 되려는 기업들이 수년간 미국 시장에서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이제 조금씩 매출 실적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국산 SW 기업 중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회사를 꼽기는 힘들다.
이런 가운데 핸디소프트·한컴씽크프리·인피니티·세중나모인터랙티브 등 수많은 시련에도 꿋꿋하게 미국 시장을 개척해온 국내 기업들이 이제 결실을 거둬들일 준비에 한창이다.
◇세계 최대, 미국 SW 시장을 잡아라=미국 SW시장은 세계 SW기업의 경연장이다. MS와 오라클 등 몇 개의 대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연간 10억달러 규모의 SW를 판매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작년 미국의 시스템 SW 시장규모는 302억5800만달러에 달했다. 서유럽이 195억달러, 중남미나 동유럽, 중동이 각각 17억9750만달러, 10억200만달러, 10억6900만달러와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IDC는 올해 미국 시스템 SW 시장이 328억1600만달러 규모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 SW 시장이 일대 변혁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IT시장에 수많은 변혁을 몰고온 구글이 웹 기반 워드프로세서 업체 라이틀리를 인수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SW 업계에서도 이 소식을 접하며 온라인 SW 서비스 시장의 새로운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로 온라인 SW서비스 시장의 개화다. 구글은 지난해 오픈오피스의 후원자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와 손을 잡은 데 이어 10일에는 웹 기반 워드프로세서 업체 라이틀리마저 인수했다. MS 역시 라이브 전략을 내세우며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SW시장이 급변혁기를 맞고 있다.
◇재도전은 시작됐다=구글이 내세우는 온라인 SW서비스 모델은 6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 쿠퍼티노에 자리 잡았던 씽크프리(http://www.thinkfree.com)가 제일 먼저 제시한 개념이다. 1999년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더 눈여겨 온 웹 기반 오피스 프로그램 제공 기업, 씽크프리. 이 당시 포춘·새너제이 머큐리·인포월드·PC 매거진 등 첨단 산업 관련 신문과 잡지들은 일찌감치 ‘씽크프리 오피스’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로 평가했다. 인터넷이 마이크로소프트로 대표되는 PC시대를 탈피, 새로운 패러다임의 소프트웨어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찬사에도 불구하고 씽크프리는 미국 내 브로드밴드 인프라가 생각보다 늦게 보급되면서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 후 2003년 한글과컴퓨터에 인수된 씽크프리는 지난해 ‘씽크프리오피스 3.0’을 내놓고 오피스 포털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99년에 그랬던 것처럼 한컴씽크프리는 여전히 미국 내에서 앞선 기술을 가진 회사로 주목받고 있다. PC월드는 2월호 커버스토리로 차세대 웹을 이끌 50개의 사이트를 소개하고 가장 주목받는 5개의 사이트를 지목했다. 웹메일 분야는 지메일(Gmail)을, 사진 공유 사이트는 플리커(Flickr), 즐겨찾기 공유 분야는 딜리셔스(Del.icio.us)를 꼽았다. PC월드는 웹 워크 사이트 분야에 씽크프리오피스온라인(ThinkFree Office Online)을, 비디오 공유에는 비립닷티비(Blip.tv)를 선정했다. 이제 한컴씽크프리의 6년여에 걸친 도전이 최근 성과를 내고 있다. 한컴씽크프리는 지난해 7월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후 5만명의 개인 회원이 생겼다. 또 구글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유명 포털들이 씽크프리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씽크프리는 무기 제조 회사인 FN 매뉴팩처링에 씽크프리 서버 솔루션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실패를 딛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에 틈새 시장을 겨냥한 아이팟용 프레젠테이션 SW도 한컴씽크프리의 미국 내 입지를 강화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아이팟 경제(iPod Economy)’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애플의 MP3플레이어 아이팟 주변 기기 시장은 폭발하고 있다.
이에 편승, 한컴씽크프리는 지난 1월 출시한 아이팟용 프레젠테이션SW를 미국 내 애플숍에 제공하고 있다.
국산 SW가 미국 소비자 시장에 판매되는 것은 세중나모인터랙티브의 나모웹에디터를 포함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드물고, 힘든 일이다. 조나단 크로우 씽크프리 상품 마케팅 매니저는 “6년 전 개발 초기부터 미국 시장에 최적화됐고 마케팅과 품질 관리 등을 전문 기업에 아웃소싱하는 등 완벽하게 미국화 된 SW가 오랜 노력 끝에 시장에서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며 “일반 소비자는 물론 기업 고객의 문의가 잇따르는 등 올해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강태진 한컴씽크프리 사장
“6년여 간의 도전과 인내에 대한 결실을 거둘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99년 미국에 웹 기반 오피스 SW개념을 제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강태진 한컴씽크프리 사장은 6년여의 긴 시간 동안 미국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은 기업으로 남아있던 것에 대한 평가를 받은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닷컴 거품 속에 수많은 벤처 기업이 실리콘밸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씽크프리 역시 실리콘밸리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시련을 겪었지만 그 어떤 기업보다 강해졌습니다.”
강 사장은 한컴씽크프리는 한국계 SW기업이지만 철저히 미국화 된 기업 운영과 SW를 개발해왔다. 그는 요즘 지난 99년 회사를 설립할 때와 같은 자신감에 차 있다. 새로운 웹 환경의 도래와 MS의 ‘오피스12’가 오피스SW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6년 전 씽크프리가 제시했던 광고를 기반으로 한 웹 기반 SW서비스 모델을 성공시켰습니다. 미국 브로드밴드 인프라 확충과 웹 2.0, 에이젝스(AJAX)기술이 웹 기반 SW서비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런 플랫폼 변화에 맞춰 씽크프리 오피스도 다시 각광받고 있다.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광고를 기반으로 한 오피스SW 서비스만 진행했던 한컴씽크프리에 기업용 오피스SW 제품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무기 제조 회사인 FN 매뉴팩처링을 비롯해 미국 내 5∼6개 기업이 씽크프리 서버 솔루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용 서버 솔루션은 현지 기업들의 요청에 의해 개발됐습니다. PC를 통한 주요 정보나 기업기밀 유출 등이 문제화되면서 오피스 SW 역시 서버 기반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강태진 사장은 기업 고객들을 위해 소호 및 중견중소기업(SMB)용 온라인 서비스를 2분기 안에 시작할 예정이다. 개인과 기업 오피스 포털을 통해 PC에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워드와 파워포인트, 엑셀 등의 문서를 자유롭게 보고 저장할 수 있게 된다.
강 사장은 “씽크프리는 철저히 미국화된 브랜드로 성장했다”며 “한국의 웹 기반 오피스 SW 서비스 포털이 이제 구글과 경쟁에 나선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