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연임이 불발로 끝남에 따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차기 총장 선출이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29일 과학기술계 및 KAIST에 따르면 지난 28일 KAIST 이사회에서 러플린 총장 연임 불가 방침이 확정됨에 따라 차기총장 후보 선출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외부인 영입설, 외국인 재영입설, 서남표 MIT교수 유력설 등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번 러플린 총장 낙마를 주도했던 KAIST교수협의회는 일단 지난달 전체 교수협 총회에서 7인으로 총장추천위원회(위원장 김양한 기계공학과 교수)를 구성해 놓은 상태다. 그동안 KAIST 총장 선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총추위가 과연 누구를 추천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총추위측은 일단 오는 5월 13일까지 후보를 물색할 방침이다. 총추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이번 총장 후보 추천에서 내부인을 올릴 경우 집단 이기주의로 비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총추위가 내부인보다는 러플린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할 해외 인재를 포함해 외부인 영입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KAIST 총장선출 절차는 이사회가 총장임기 만료 2개월 전까지 이사회 이사 2명, KAIST 교수 1명, 이사장 지명 외부인 1명, 과기부 당연직 이사 1명 등 5명으로 ‘총장후보선임위원회’를 구성한 뒤 개별 지원자 및 총추위가 추천한 후보 1∼2인을 대상으로 총장 임기만료 3주일 전에 총장 후보자 3인 이내를 선출, 이사회에 추천하도록 돼 있다.
총추위 관계자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서남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도 후보 중의 한 명일 뿐”이라며 “KAIST의 처우개선보다는 솔선수범, 세계화, 국가발전 등에 도움이 되는 큰 그림을 그릴 인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KAIST경영진은 29일 오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수습책 논의에 들어갔다. 이날 회의에서는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따른 후폭풍과 1000억원에 달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토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러플린 총장이 추진했던 KAIST사립화 방안과 종합대학화 추진은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학교 구성원을 중심으로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러플린 총장 인터뷰
러플린 총장이 29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사회의 연임 거부 결정과 관련해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KAIST의 갈길이 확연해졌나.
▲정부에서는 갈등 봉합을 원했다. 기관을 바꿀 때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적극적인 변화 대신 순조롭게 가야 한다고 결정났다.
-임기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예산과 규정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내부 규약이나 정부와의 관계 확립이 제대로 안되어 있었다. KAIST 설립당시의 법이 문제가 있어 정비하지 못했다. 힘이 있었다면 규정 및 법률체계를 정비했을 것이다.
-총장의 이상을 실현했다고 보나.
▲KAIST는 반드시 MIT와 필적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길이 옳은 길이라 봤지만 법적 제도의 미비로 혼란스러웠다. 성과는 나중에 KAIST가 글로벌 대학이 되면 판명날 것이다. KAIST는 국제화의 첫 단계에 있고 잘 진행되고 있다.
-후임 총장으로 외국인이 또 올 수 있다. 임기를 마칠 덕목을 꼽으라면.
▲임기를 오래 갖고 싶으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러나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직책을 맡았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실패한다고 해도 일을 만들어 추진하라고 후임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교수 집단 행동에 대한 의견은.
▲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맞지 않다. 교수와 의견이 달랐을 때 타협점 찾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총장이 충분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기를 원했지만 나는 해야 했다.
-교수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것은 비즈니스다. 한국인은 정서상 비즈니스를 불편하게 느낀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결코 우호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KAIST 간 비즈니스는 끝났지만 실망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즈니스로 옮겨 가는 것이다. 섭섭한 것 없다.
-왜 자진 사퇴를 철회했나.
▲사임하면 본인에게 책임이 돌아오지만 그렇게 안 하면 책임 여부가 이사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사임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향후 계획은.
▲3개월 남았는데 총장으로서 상징적인 것을 하겠다. 끝나면 미국 스탠퍼드로 돌아갈 것이다. 이사회의 책임석좌교수 제안은 공식적으로 아직 없다. 나에 맞는 대우를 해주면 수락할 것이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