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5시]갈길 먼 e스포츠 드래프트

지난 20일 오후 4시 용산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선 2006 상반기 스타크래프트 부문의 드래프트가 열렸다. 아직은 선수층이 엷은 e스포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신인 발굴과 팀라인업 보강이라는 양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이번 드래프트에는 표면적으로 55명의 준프로가 참가해 지난 하반기 신청 인원의 2배가 넘는 경쟁률을 보여 e스포츠가 대중 스포츠에 한발 더 다가섰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드래프트 식순 중 어찌보면 가장 중요하고 진지해야 될 선수들의 ‘자기 소개 시간’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자신을 뽑아달라며 적극적인 PR을 해야 할 자리에서 연습생으로서의 현 소속팀만 밝히며 소개를 대신한 것.

e스포츠 관계자라면 2, 3차 지명까지는 이미 각 팀의 연습생들로 지명선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신인 드래프트 자리에서 대놓고 소속을 밝히며 자신을 뽑아달라고 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않는 일이다. 심지어 일부 선수들은 아예 이미 팀 로고가 선명한 선수복을 착용하고 무대에 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계속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일부에선 실소가 터져나왔다.

현재 프로게이머를 양성할 만한 마땅한 기관이 없기에 팀 단위로 연습생을 선발해 육성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육성 기관을 만들어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지만, 아직 완벽한 모양새가 갖춰지지 않은 e스포츠라 할 지라도 신인 드래프트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선 좀 더 진지하고 형식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이 사치일까.

3차 지명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 후 감독들의 불만도 터져나왔다. 조금은 빠른 진행에 문제가 있었던 것. 선수들을 파악 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좀 더 이른 시기에 드래프트 명단과 선수들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모양새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e스포츠를 좀 더 안정된 궤도에 올리고 싶다면 대중의 눈을 의식하는 형식도 무시해선 안된다. 안에서 자신들만의 잔치를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좀 더 형식을 갖춘 후 대중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이 좀 더 체계잡힌 e스포츠판을 꾸리는,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시작이 아닐까.

<김명근기자 diony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