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상호접속 규제도 도마위로
“올아이피(All IP)망 시대의 상호접속 준비 이제부터 시작이다”
통신망의 컨버전스가 가속화되면서 정부의 법·제도 정비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통신·방송을 포괄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 전통적인 서비스 위주 구분에서 탈피, 새로운 환경에 맞게 사업자의 역무를 구분하는 것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 이와 함께 시장의 효율적 투자 및 공정경쟁 확보를 위해 상호접속 체계를 재정비하는 일도 향후 핵심과제 중 하나다. 통신·방송의 경계가 없는 다양한 엑세스망의 등장, 음성과 데이터 서비스 결합 등에 맞춰 접속점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정산 기준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공중전화망(PSTN) 중심의 상호접속 제도를 All-IP 기반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세계적으로 차세대 All IP 네트워크 시대에 맞는 상호접속에 대한 연구는 이제 첫걸음 단계다. 하지만 이미 기술은 다양한 컨버전스 서비스를 눈앞에 구현하고 있어 도입 초기 겪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정부 및 관련업계의 논의가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양한 엑세스망의 등장=차세대 통신환경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용자가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엑세스망이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초고속 인터넷, 이동통신, 케이블, 휴대인터넷, 지상/위성DMB등 사용자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엑세스망이 제공된다. 게다가 사업자의 백본은 음성 중심의 서킷망에서 데이터 중심의 패킷망으로 전환된다. 상호 접속 체계의 변경 필요성도 여기서 출발한다. 현행 접속 원가 산정은 음성통화량 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무선데이터 서비스의 지속적인 확대와 다양한 엑세스망에 기반한 신규서비스의 확산에 따라 접속 원가 산정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 특히 통·방 융합의 가속화로 접속 제공 및 접속 이용 사업자의 변화가 예상된다.
컨버전스 진화단계별로 상호접속의 관점을 달리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서킷과 패킷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과도기에는 음성 및 데이터 설비를 공통으로 사용하거나 별개로 사용하는 접속 이용사업자의 접속원가를 산정하기 위해 음성/데이터 원가 분리의 필요성이 높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네트워크의 All IP화가 달성되는 시점에서는 이런 구분 조차 무의미해질 전망이다. All IP화가 달성되는 시점에서는 음성/데이터의 전송이 패킷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All IP망의 이용량 측정방안=현재 접속원가 산정 및 정산은 사용량 기준으로 접속원가 산정이 이뤄지나 All IP망 기반하에서는 접속원가 산정 및 정산체계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무정산방식, 원가기준에 의한 방식, 역사적 기준에 의한 방식 등 현재 제기된 방법론은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사업자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새로운 기준 마련이 순탄치 만은 않을 전망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향후 All IP망 기반 하에서는 새로운 서비스 및 사업기회의 확대를 위해 사용량 기반, 최대용량 기반, 수익 기반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서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시장 효율성 및 공정성 확보=차세대 네트워크의 구축 관련, 선후발 사업자들의 편차가 더욱 크게 늘어나는 점도 정책 결정에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선발 사업자의 경우, 지속적인 투자확대를 통해 All IP망 구축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후발사업자들은 투자가 지체되고 있는 상태. 선발사업자의 망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설비구축이 필요한 만큼 후발사업자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사업기회의 확대와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비효율적 시장 진입과 투자 등을 억제, 망이용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묘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All IP 시대에는 통신사업자들이 QoS 보장 여부에 따라 네트워크 운영을 이원화할 공산이 높다. QoS 차등 적용에 따른 시장별 접속체계 및 과금방식 차별화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또 음성, 데이터 별로 QoS의 보장 수준을 어디까지 규정할 지도 관심을 가져야 할 연구 분야다.
◇콘텐츠 사업자와의 정산도 과제=전통적으로 상호접속의 주 대상은 네트워크 사업자였다. 하지만 향후 통·방 융합 환경 하의 역무구분이 네트워크 사업자, 콘텐츠 사업자, 플랫폼 사업자로 구분되면서 상호접속의 정의도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네트워크사업자 간의 접속료 산정 및 정산 뿐만 아니라 콘텐츠 및 플랫폼 사업자와의 상호 협약에 의한 정산도 향후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그간 인터넷사업자나 콘텐츠업체들은 무선망에는 정보이용료라는 명목으로 이용료를 제공했지만 무선망은 사실상 무료로 사용해온 상태. 따라서 향후 네트워크사업자와 콘텐츠업체 간의 정산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할 공산이 높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통신서비스연구단 현창희 박사는 “향후 All IP 시대에는 유무선 통신, 방송, 인터넷 포털, 콘텐츠사업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업자들이 등장함에 따라 공정경쟁의 확보 문제가 더욱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라며 “통합되는 망 간의 접속체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현재 추진되는 BcN 등 차세대 네트워크 사업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말했다.
◆상호접속 제도 논의 이제 시작단계
지난해 10월, KT가 주최한 ‘차세대 통신망 환경에서의 접속제도’ 포럼. 이 행사는 All-IP 시대에 따른 상호접속 등 접속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취지로 열렸다. 차세대통신망에서 끊김 없는 유비쿼터스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사업자간 접속 문제를 논의하는 최초의 포럼이었다. 그러나 KT는 ‘올 아이피 시대의 상호접속’이란 화두를 꺼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차세대 인터넷망을 준비하는 브리티시텔레콤, 도이치텔레콤, NTT, 텔루스(캐나다), 칭화텔레콤(대만) 등 세계 주요 통신사업자 들이 ‘차세대 망’에 대한 정의조차 통일되지 못한 것. 차세대망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차세대 서비스는 물론 접속제도 논의조차 꺼내기 힘들었다.
KT경영연구소 이용훈 연구원은 “연구 주제를 던진 수준이었고 주제를 선정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라며 “시스템과 기술표준이 마련돼야 제도가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올해는 건너뛰고 내년쯤 2차 포럼 개최를 검토 중이다.
이같이 IP기반 망에 대해서는 선행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영국과 일본 등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통신망의 발전이 우리나라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뒤져 있어 외국사례 참조가 어렵다. 시작은 커녕 발아조차 하지 못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또 IP기반 망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내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차세대 네트워크에 대한 국제 표준화 작업을 하는 NGN포커스그룹(FG-NGN)도 3년간 치열한 공방 끝에 정의 내리기에 잠정적으로 합의하고 올해 IPTV 등 킬러서비스 표준화 작업에 나선 상태다.
그럼에도 IP기반 시대에 상호접속 연구는 결코 놓칠 수 없다. PSTN망에서 상호접속은 미국 등 정보통신 선진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따라가는 형태였지만 IP기반에서는 한국이 선도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정통부에서 인터넷전화 상호접속료 정산 방식을 확정한 것은 IP기반 상호접속 제도 마련의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통부는 △수익자 부담원칙 △인터넷망 이용대가 (가입자당 월 1500원)는 상, 하향 대역폭 대비 인터넷전화 호 처리에 필요한 대역폭 비중(약 5%)에 초고속 인터넷 요금(약 3만원)을 곱해 산정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향후 상호접속 논의의 중요한 사례로 인용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초고속인터넷 인프라에 이어 정책도 세계적인 주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인터넷전화, IPTV 등 서비스 표준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접속정책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
이용훈 연구원은 “FG-NGN에서 IPTV 기술표준을 한국이 주도하기로 한 것은 상호접속 논의의 첫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라며 “통·방 융합 시대 상호접속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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