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철도청 프로젝트
1980년대 프라임은 국내·외에서 엄청난 상승세를 구가했다. 국내에선 조양상선·특허청·주택공사 등이 프라임 대형 기종을 도입하고 씨티은행은 세계 시스템 환경을 프라임으로 전면 교체할 정도였다.
이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사건이 1983년 기계공학 전문가인 임관 박사와 진행했던 프로젝트다. 일본 아이오와대학 교수 재직 중 한국 정부 초청으로 KIST 소장직을 맡은 그는 당시 한국의 기계공학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던 중 아이오와대학의 500여개 설계 패키지를 들여올 계획을 세웠고 나에게 프라임 750을 구입할 예산이 없으니 기증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패키지는 몇십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기계공학 노하우를 모두 들여오는 것인데 한국 기계공학의 엄청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 했다.
나는 흥분을 누르며 당장 기증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중에 임 박사와 나는 온갖 루머와 음해에 부딪혔고 결국 아이오와대학의 설계 패키지 도입 계획도 무산됐다. 성사됐다면 우리 기계공업은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혔을텐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요한 기술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으니, 아이오와대학 설계 패키지의 도입 좌절에 대한 아쉬움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한편 KCC가 철도청 온라인시스템 구축 사업에 뛰어든 것은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1981년 철도청은 예약 및 발권 업무 전산화를 위해 온라인 기능을 갖춰야 했고 IBM·유니백·후지쯔·히타치 등이 경합을 벌였다. 그런데 프라임은 아예 입찰조차 할 수 없었다. 권투로 치자면 헤비급 시합전에 플라이급도 못 되는 프라임은 얼쩡댈 자리가 아니란 것이었다.
사실 그때까지 대용량 프라임은 납품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기에 남경락 전자계산소장을 찾아가 무조건 졸랐다. 그는 일언지하에 반대했지만 나는 대여섯 번이나 찾아가 프라임의 장점 등의 논리를 펴며 일단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삼고초려 끝에 마침내 입찰 참여권리를 따냈고 KCC는 즉시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총력을 기울였다.
우선 장비 가격을 미국 본사와 여러 번에 걸쳐 협의, 최대한 낮은 가격을 받아냈다. 반면 방심한 다른 벤더들은 거의 천문학적인 가격을 써냈다. 당연히 프라임이 낙찰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한마음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6개월 만에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정말로 엄청나게 빠른 구축 속도였다. 단기간에 개발했지만, 성능이나 완성도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 패키지를 이후 그대로 태국에 수출한 것이 그 사실을 방증한다. 수출 가격도 100만달러로 당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특히 국내 소프트웨어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다는 생생한 교훈을 얻은 것이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철도청 프로젝트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남경락 소장을 비롯한 초기 철도청 관계자들이 앞선 정보화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이다. KCC가 여러 번 찾아가 조른 것이 물론 많은 작용을 했지만 우리의 논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가짐과 업무와 조직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이 큰 작용을 한 것이다.
cylee@kc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