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로봇의 메카를 지향하는 경남 로봇산업은 이미 한국 기계산업의 중심지가 된 때부터 시작됐다. 마산과 창원을 양대 축으로 우리나라 기계산업은 성장했고 메카트로닉스로 불리는 기계와 전기, 전자의 결합을 통한 첨단 자동화 기계는 곧바로 로봇산업으로 연결된다.
경상남도가 4대 전략산업의 하나로 로봇을 선택한 것은 로봇산업의 비전 때문만이 아니다. 경남의 로봇산업은 의도적 전략산업이라기보다 자생한 특화산업이다. 첨단 로봇 개발의 탄탄한 인프라로 작용할 거대한 기계산업은 로봇개발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었다.
경남 로봇산업은 2004년부터 오는 2008년까지 총 757억원이 투입돼 ‘로봇거점센터 설립 및 운영’, ‘첨단제조용 로봇 개발’, ‘로봇 공통기반 기술개발’ 3가지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155억원을 들여 마산시 외곽 중리 공단에 부지 3000평, 건물 1500평 규모로 설립될 ‘로봇거점센터’는 현재 5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경남을 넘어 국내 산업용 로봇의 허브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다. 국제적인 발전 도모, 네트워킹을 통한 지역 내 로봇관련 중소기업 지원, 첨단 산업용 로봇 지원을 통한 생산자동화 체제 구축 등의 역할을 맡는다.
‘첨단제조용 로봇개발사업’은 로봇거점센터가 하드웨어라면 소프트웨어에 비유할 수 있다. 높은 잠재력과 발전분야 또한 다양할 것으로 전망돼, 가장 많은 403억원이 투자된다. 경남 로봇산업의 핵심이다. 첨단 제조용 지능로봇시스템 설계 및 응용기술 개발, 제조공정 자동화용 지능제어 알고리즘 개발을 목표로 지난 1년간 관련 기술개발 과제 공모와 심의·선정·협약 체결이 진행됐고, 올들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위아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경남대, 창원대 등 대학이 연계돼 기술개발 과제를 시작했다.
‘로봇 공통기반 기술개발 사업’은 제목 그대로 앞서 언급한 로봇개발을 뒷받침하는 기술개발 분야다. 로봇을 조종하는 제어구동기술 확보는 산업용 로봇개발의 핵심이다. 하지만 자동화기계를 제어하는 제어기는 현재까지 대부분 선진국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봇산업의 발전과 확대를 위해서는 로봇전용 자동 제어기 개발이 필수라는 인식 아래 오는 2008년까지 199억을 투입, 기계·조선·자동차·항공 등 경남 제조기업 특성에 맞는 제조업용 로봇 개발을 위한 기반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다.
3가지 분야의 실무 추진 역할로 경남테크노파크 전략산업기획단,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하는 교수와 연구원 중심의 경남로봇산업교류회, 그리고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망라한 기업군이 3각 편대를 이뤄 경남 로봇산업을 이끌고 있다.
로봇교류회 한성현 회장(경남대 교수)은 “지난 2000년부터 정기적인 로봇전문 국제 콘퍼런스를 경남에서 개최해왔고 세계 주요 로봇 전문 명사를 초빙해 국내 로봇산업의 현황과 발전방향을 점검해왔다”며 “로봇산업 인프라 구축과 개발을 위한 학문적 밑바탕을 가장 잘 다져온 곳이 바로 경남이다”고 말했다. 경남의 로봇산업은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오래전부터 시작됐다는 얘기다. 한 회장은 경남의 산업용 로봇을 보다 정확한 표현으로 ‘제조용 지능형 로봇’이라 정의했다. 이는 현재의 첨단 자동화 로봇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섬세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즉 문자를 인식하고 통신이 가능한 전문가용 로봇을 뜻한다. 경남이 가진 기계산업 기반에 어울리는 로봇이며 또한 경남이 갖춘 산업 현장에 바로 채택해 사용가능한 경남이 필요로 하는 로봇이기도 하다.
경남 전략산업기획단과 로봇거점센터 연구진은 이러한 ‘제조용 지능형 로봇’ 개발을 보다 세분화해 우선개발 로봇을 설정했다. 자동차 및 기계부품 제조용 로봇, 정보통신기기 제조용 로봇, 조선해양용 로봇 3종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조선 공정 및 수리 자동화 로봇’과 ‘첨단 전자부품 핸들링 로봇’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종목을 우선 추진과제로 정했다.
이와 관련 로봇거점센터 강명호 소장은 “(우선추진 과제는) 조선 강국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저 청소 등 특정부문의 자동화 로봇이 개발 생산돼 보급될 경우 로봇산업 전반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국가 및 기업보다 한 발 더 앞서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정해진 것”이라며 “특히 로봇 부품생산의 경우 과거 자동차 부품과 달리 LCD, 유무선 센서 등 첨단 전자부품 수요가 높아 이에 따른 새로운 산업분야도 기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중공업과 대원기전은 조선용 로봇 개발, 대호테크와 유성정밀 등은 첨단 전자제품 제조용 로봇, 위아는 현장 자율주행 로봇 개발 과제를 대학과 연계해 진행 중이다. 또한 로봇거점센터를 중심으로 가능성있는 중소 로봇제조사를 발굴해 25개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개발 지원책이 마련돼 있다.
경남 로봇산업은 이미 지역 전략산업의 개념을 넘어 한국 로봇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제조용 지능형 로봇은 미래의 과제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로봇개발 아웃소싱과 중소기업 집적화
“경남 로봇산업은 대기업 중심의 1사 1로봇 개발 체제에서 중소기업과의 협업체제 또는 대폭적인 아웃소싱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로봇개발을 위한 기술력을 대기업이 갖고 있다해도 부품은 물론 직접 제조를 담당하는 곳은 중소기업이 돼야 한다” 경남지역 로봇제조 중소기업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현재 경남 로봇산업은 보유인력과 기술에서 앞서있는 몇몇 대기업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지원 과제 선정과 관심은 특정 대기업과 관련 로봇개발로 집중된다. 이에 따른 중소기업의 소외감은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경남 로봇산업이 몇몇 대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고착화되면 굳이 지역 전략산업으로 지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동안 국내 제조업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탄탄한 중소기업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내실있는 발전을 꽤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대기업의 아웃소싱 물량을 소화하고 중소기업 자체의 제조개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중소기업 협동화, 또는 집적화 단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자동차 부품생산 단지처럼 중소기업 협동단지는 부품 생산에 효율을 높여줄 뿐 아니라 대기업의 로봇조립과 생산 과정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 로봇제조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봇밸리 박명환 사장은 “로드맵 수립과 대기업 중심의 특화 로봇 생산은 순조로울지 몰라도 현재 중소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집적화 단지 조성은 진척이 없다”며 “홈스마트산업 관련 단지는 이미 조성에 들어갔는데 오래 전부터 요청한 로봇단지 조성은 무엇이 걸림돌인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아 그나마 마산밸리에 모였던 기업 마저도 흩어지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경남 로봇산업을 이끄는 사람들
대우조선해양의 한용섭 상무는 대우조선해양 산업연구소와 로봇연구소를 맡고 있는 이 회사의 최고 기술자다. 23년 동안 정밀측정, 생산자동화 및 용접기술 분야에 몸담아왔고 과거 수입에 의존했던 선박용 조립·용접 로봇을 자체 기술로 개발, 생산성을 크게 늘려 대우조선해양이 LNG선과 유조선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각광을 받도록 만든 주인공이다.
삼성중공업 김재훈 상무는 부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브라이트 주립대 시스템공학 석사와 퍼듀대 항공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과 삼성중공업 기계전자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거쳐 현재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제5세대 컨테이너 크레인 무인자동화 시스템 개발로 삼성그룹 기술상을, 지능형 자동용접 시스템 개발로 IR52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국산 신기술 인증서를 다수 보유한 로봇개발에 필요한 기반기술 전문가다.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로봇밸리 박명환 사장은 경남 로봇산업 초기부터 중소기업 결집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애써온 인물이다. 대우중공업에서 로봇사업부문을 이끌어오다 4년 전 직접 회사를 차리고 자체 개발과 경영에 나섰다. 현재 중소기업의 생존과 발전없이는 경남 로봇산업 발전도 가능하지 않다는 소신아래 경남도와 마산시를 상대로 중소 로봇제조사 협동화 집합단지 조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한성현 교수는 경남 로봇산업의 이론적 틀을 마련해 온 경남 로봇산업의 브레인이다. 경남대 기계자동화공학부 교수로 삼성중공업과 금성반도체 연구원을 지냈다. 지난 2000년부터 로봇관련 세계적 권위를 가진 인사들을 모아 이곳 경남에서 첫 학술심포지엄을 주도했다. 현재 경남 로봇산업의 방향과 학문적 토대를 제공하는 경남로봇산업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외에도 테크노파크 거점로봇센터 강명호 센터장, 국금환 경상대 교수, 박세진 위아 부장, 정광조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원 등이 경남 로봇산업을 이끌고 있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