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현대·기아차 그룹의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전경련이 6일 발표한 우리나라 윤리경영 추진현황 보고서에서 국내 500대 기업의 42.3%가 스스로 윤리경영 수준을 ‘A학점’ 이상으로 평가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인간의 무제한적인 욕심과 충동을 합리적으로 억제하고 조절하는 것을 자본주의 근간으로 보았다. 가능한 한 많이 취득하지만, 한편으로 절약하고 타인에게 베푸는 윤리의식이 자본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이다. 금욕과 직업적 소명의식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의 토대라는 것이다.
막스 베버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윤리의식이라는 결론이다. 엔론·월드컴 등 미국 기업의 잇따른 회계부정 사건으로 윤리적인 기업 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태동부터 윤리경영은 강조돼 왔다. 윤리는 자본주의 기업경영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인식하고 실천하는 윤리경영의 모습은 이와 사뭇 다르다. 한국 기업에 윤리경영은 연말·연시에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는 이벤트 행사와 일맥상통한다. 만약 분식회계를 금지하고 금품이나 향응을 받지 않는 윤리강령을 채택한 회사라면 당연히 A급 수준이다.
물론, 기업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은 윤리 경영의 좋은 사례다. 경영자가 비자금을 만들거나 회사 돈을 빼돌리지 않는 것도 윤리경영이다. 그러나 기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 직원을 착취하는 것 또한 윤리경영이 아니다. 10원짜리 제품으로 소비자를 속여 100원에 파는 것도 자본주의적 윤리정신에 어긋난다.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라면 협력회사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된다.
결국, 윤리경영이 아닌 기업경영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윤리적이지 않은데도 높은 성과를 올리는 우량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기업과 윤리경영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의 관계다.
◆IT산업부·주상돈차장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