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에겐 꿈의 무대로 불리는 것이 스타리그다. 본선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A급 스타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소위 ‘메이저리그’라고도 불리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스타리그에 오르지 못하고 예선을 전전하는 프로게이머들에겐 (PC)방을 지킨다고 해서 ‘가정부’라는 안좋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문제는 ‘내일은 임요환’이란 한가지 목표 아래 절치부심하는 미래 꿈나무들을 배출하는 PC방 예선의 미숙한 운용체계다. 스타리거의 등용문, PC방 예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주, MBC게임과 온게임넷은 개인리그인 ‘스타리그’와 ‘MSL’ 본선 진출자를 뽑기 위한 오프라인대회, 이른바 ‘PC방 예선’을 치렀다. MBC무비스배 서바이버리그 예선은 이수역 근처 PC방에서, 온게임넷 차기스타리그 추가 선발 예선전은 봉천동의 한 PC방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특히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PC방 예선은 원래 듀얼토너먼트 진출자 선발전이었으나, 본선이 16강에서 24강체제로 바뀌면서 스타리그 진출자를 뽑는 대화로 격상(?)돼 선수들간의 경쟁이 어느때보다 치열했다.
하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은 우여 곡절 끝에 경기장소가 봉천동에서 용산 아이파크몰 내의 e스포츠 상설 경기장으로 변경되는 해프닝을 벌이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진행돼 선수들의 불만을 샀다. 선수들과 코치진, 관계자들이 대 이동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 이 밖에도 이번 PC방 예선은 운영상의 많은 문제점을 노출, 아쉬움을 남겼다.
# 게임만 있고 선수는 없다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은 늦은 시간에 좀 더 집중이 잘 된다는 이유로 주로 오후와 야간에 걸쳐 많은 연습을 한다. 선수들의 숙소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방문해 보면 선수들과 코치진들이 아침식사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선수가 참가하다보니 오전 10시부터 경기가 편성돼,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어야했다. 이번 오프라인 예선에 참가한 한 감독은 “바이오 리듬상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시간은 저녁”라며 “오전 조에 속한 팀 선수들 때문에 걱정된다”고 불안한 심경을 밝혔다.
경기 시작전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의 표정에서도 피곤함이 역력해 보였다. 오전 시간대 오프라인 예선에 참가한 한 선수는 “오전 조에 속해 많이 피곤하다”며 “평소에 선수들의 생활패턴을 생각해서라도 오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PC방에서 치러지는 오프라인 예선의 경우,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하는 선수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오프라인 예선 중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를 위해 마인드 콘트롤을 해야 할 선수들이 비좁은 PC방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관계자들은 “차기 스타리거를 꿈꾸며 연습에 매진해 온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선수들이 가장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고 경기를 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정도의 정성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사전준비 부족이 화 불러
대회를 주관하는 방송사의 준비부족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추가 선발 예선 경기가 예정 장소였던 PC방의 시스템 결함으로 인해 한 동안 지연됐다. 관계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으나 끝내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감독들의 투표(찬성:6 반대:4 중립:1)를 통해 결국 용산 아이파크몰에 위치한 상설 경기장으로 옮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동과 식사을 해결하기 위해 3시간 반의 시간을 소비하고 오후 1시 반이 되서야 본 경기가 시작됐다.
이렇게 지연된 경기는 다음 날 새벽 1시가 돼서야 모든 대진을 끝낼수 있었다.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더욱 힘든 하루였다. 애초부터 상설 경기장에서 했으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온게임넷측은 “항상 해오던 대로 PC방에서 치뤘을 뿐”이라며 “협회측에서 제의 한적이 없어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에대해 협회측에선 “방송국 측에서 제의한 적이 없어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만약 제의가 들어온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양측 다 서로의 제안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동안의 잘못된 관행을 이어온 것이다.
한 전문가는 “봉천동이 용산 아이파크몰과 가까워 다행이지 만약에 천호동에서 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며 “좀 더 계획성 있게 경기를 준비했으면 한다”고 현재의 예선 시스템을 지적했다.
# 마이너리그 철저히 관리해야 발전
진행상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추가 선발 예선전 오전 조의 경기가 막바지에 치닫고 있을 무렵 한 동안 감독들의 신경전이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해처리 버그로 인한 재경기 판정이었다. 감독들은 저마다 자기팀 소속 선수들의 유리함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도 화가 날 일이지만 실제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막바지 공격에 열을 올리던 선수는 더욱 힘이 빠질 일이다.
협회 측에서 나온 심판진이 부족해 경기 진행상의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 관계자는 “물론 사건의 발단이 시스템의 문제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한번에 70여명이나 되는 많은 선수가 게임에 접속해 경기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일어날 것을 대비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e스포츠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예선도 본선과 마찬가지로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치러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타리그는 e스포츠계 최고 흥행 카드다. 그러나, 스타리그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더 많은 스타를 배출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스타 등용문인 PC방 예선을 결코 무시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투자의 관점에서 선수들에 대한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e스포츠계 한 전문가는 “미국 메이저리그(야구)나 NBA와 같은 세계적인 오프라인 스포츠를 봐도 마이너리그가 체계적으로 잘 운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e스포츠가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 발전하려면 프로게임의 요람인 PC방 예선 운영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명근기자 diony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