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접촉식 카드 시대가 열린다](상)긁지 않는 카드

서울 가양동에 사는 주부 류 모씨는 남편 출근과 자녀 등교가 끝난 오전 10시, 집 근처 H쇼핑몰에서 주방용품을 사고 계산대에 비치된 단말기에 자신의 신용카드를 대고 영수증을 받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동창생을 만나 인근 C영화관에 들러 역시 매표소 단말기에 카드를 살짝 스친 뒤 영화표를 구매했다.

 이제는 단말기에 금융 카드를 ‘긁을’ 필요가 없다. 일정 금액 이하는 서명도 필요 없다. 이처럼 신용카드를 결제 단말기에 ‘긁어야’ 했던 전통적인 카드 사용 환경이 비접촉식 카드로 급속히 대체될 전망이다. 지갑 속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본지는 본격적인 적용을 앞둔 국내 비접촉식 금융카드 시장의 변화와 동향, 관련 IT업계가 맞은 비즈니스 기회 등을 3회에 걸쳐 집중 조망한다.

 

 ◇비접촉식 결제 활성화 배경=이 방식은 이미 널리 사용중인 교통카드처럼 단말기에 카드를 긁지 않고 IC칩과 RF안테나를 내장한 카드나 휴대폰을 가까이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금융환경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비접촉식 카드의 등장은 대략 90년대 중반께 선불형 교통카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접촉식 카드에 비해 보안성이 떨어지고 사용분야가 적어 금융결제 시장에 도입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말 IC칩 기술의 발전과 콤비칩(접촉식·비접촉식 겸용) 등장으로 접촉식 카드의 기능성과 보안성을 고스란히 비접촉식 환경에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해마다 거듭되는 반도체 가격하락은 금융·유통 등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콤비칩을 비즈니스 목적에 맞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왜 비접촉식인가=비접촉식 결제의 우수성은 우선 빠른 결제속도와 내구성에 있다.

 데이터 전송률이 접촉식보다 5∼10배 빨라 상품·서비스 구매시 결제시간이 0.3∼0.5초로 크게 단축된다. 또 비접촉인 탓에 단말기와 카드가 파손·마모될 가능성도 낮고 반영구성을 가진다.

 카드 사용자의 결제 대기시간 단축효과와 함께 가맹점은 비용에 해당하는 결제시간을 줄여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창출과 매출 증대를 꾀할 수 있다.

 이 같은 매력으로 소액결제가 많은 대형 쇼핑몰과 할인점, 극장·프랜차이즈 등을 중심으로 활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비자카드가 국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IC칩카드와 관련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IC카드의 장점으로 ‘안전성’과 ‘편리성’을 가장 크게 꼽았고, 비접촉식이 더 안전하다고 한 응답자(43%)도 접촉식을 앞서 당초 제기됐던 결제 보안에 대한 우려가 감소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상용 서비스의 성공=세계적인 카드 브랜드인 비자카드는 지난 2000년 국내 기업과 비접촉식 금융카드를 겨냥한 규격 표준화에 나서 2002년 국제 IC카드 표준인 EMV 기반 콤비칩을 개발했다. 또 같은 해 국내 업체인 하이스마텍·사이버넷과 손잡고 EMV 거래를 비접촉식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과는 곧 2002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IC카드 전시회 ‘카르테스2002’에 소개돼 EMV 기반 비접촉식 카드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당시 세계의 인식을 바꿔놨다.

 이후 비접촉식 결제에 대한 전 세계 금융기관의 관심이 크게 높아져 관련 사업전략 마련이 본격화됐고, 비자카드는 지난 2004년 4월 말레이시아에서 현지 중앙은행(뱅크 네가라)의 EMV 적용 심의를 통과해 세계 최초로 EMV기반 비접촉식 결제 서비스 ‘비자웨이브’의 상용화에 성공,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 IT업체가 대거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 이어 지난해 대만에서도 상용 서비스가 이뤄졌고 마침내 국내시장에서도 지난 3월부터 대형 유통점과 영화관에서 서비스가 도입됐으며 LG카드·롯데카드 등 주요카드사도 관련 카드 발급을 적극 추진하고 나섰다.

 비자카드는 비접촉식 카드가 오는 2008년까지 IC카드로 완전 전환되는 국내 금융카드 중 약 25%를 차지하고 2010년에는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정환기자@전자신문, vict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