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자상거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이달부터 의무화한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제)’ 서비스가 허술한 사후관리로 겉돌고 있다.
일정한 자격요건만 갖추면 e마켓플레이스 업체가 은행 등 공신력있는 제3자에 결제대금을 위탁하지 않고도 예탁금을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한 시행규칙을 악용, 영세 e마켓업체나 결제대행업체가 소비자 예치금을 갖고 잠적할 경우 막대한 피해도 예상된다.
17일 국내 e마켓 업체 가운데 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리·하나·제일·신한 4개 은행의 에스크로 서비스에 가입한 업체는 4곳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내 50여개 e마켓 업체 가운데 10%도 되지 않는 수치다.
이처럼 가입률이 저조한 것은 정부가 금융권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e마켓 업체가 자본금 10억원, 부채비율 200% 이하의 조건에 부합하면 자체적으로 에스크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옥션·G마켓 등 대형 e마켓은 이에 맞춰 자체 에스크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중소 e마켓 업체도 자체 서비스에 나서거나 준비중이다.
그러나 자본금 10억원, 부채비율 200% 등의 조건은 업체가 장부조작을 통해 얼마든지 맞출 수 있는데다 이를 관리 감독할 시스템이 전혀 없어 사실상 ‘에스크로 무풍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가전제품과 같은 비교적 비싼 물건을 취급하는 중소 e마켓 업체가 자본금을 10억원으로 맞추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며 “자체 서비스를 빌미로 고객예치금을 사업운용비로 전용하면서 판매상이 제품을 이미 발송하고도 일주일 넘게 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 탈법과 편법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자체 에스크로 서비스를 하는 e마켓 업체뿐 아니라 최근 우후죽순격으로 생긴 영세한 PG업체도 고객예치금을 갖고 잠적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고객예치금 유용을 막기 위해 예치금 통장을 별도로 만들어 은행에 통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최근 전자금융거래법이 제정되면서 내년 1월부터는 금융감독원이 에스크로 사업자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은행권에 따르면 고객예치금 통장을 따로 신고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데다 전자금융거래법 시행까지 8개월 가까운 기간이 남아 한동안 e마켓 업계는 에스크로 사각지대로 방치될 전망이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
<용어해설> 에스크로(escrow)=공신력 있는 금융기관 등 제3자가 결제자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거래가 안전하게 종결된 것을 확인한 뒤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안전거래 금융서비스다. 지난 1997년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우리말로 ‘결제대금예치제’로 통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