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리더에게 듣는다]넷앱 CEO 인터뷰-댄 워먼호벤

[글로벌 IT리더에게 듣는다]넷앱 CEO 인터뷰-댄 워먼호벤

 지난 3월 초 미국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어플라이언스(넷앱) 본사에서 만난 댄 워먼호벤 CEO. 그는 전형적인 단답형 스타일이었다. 부연 설명이나 수식어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투에 ‘진솔함’이 묻어 났다. 프리스턴 대학 출신다웠다.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프리스턴 대는 학생의 정직성을 믿는다는 의미에서 시험 감독이 없는 전통을 100년째 이어가고 있다. 넷앱 사훈에도 ‘정직(Integrity)’이 올라와 있다.

 “92년 설립 이 후 업계 처음으로 네트워크 부착형 스토리지(NAS)를 출시한 넷앱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넷앱도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당시 실리콘밸리는 20만 명이 직업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경기 침체를 맞았다. 넷앱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넷앱의 선택은 ‘확장’이었다.

 “네트워크 스토리지의 또다른 방식인 SAN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성장률은 NAS가 높았지만, 시장 규모는 SAN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죠” 어려운 시기에 큰 투자가 필요한 신규 시장 진출을 선택한 것.

  “2002년 넷앱이 업계 최초로 SAN과 NAS를 동시에 지원하는 통합 스토리지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닷컴 위기 때문입니다” 넷앱에게 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는 설명이다.

워먼호벤 CEO는 “덕분에 넷앱은 연 매출 20억 달러를 바라보는 중형 규모의 회사지만, 최근 3년간 매년 20∼30%씩 성장하는 회사가 되었다” 라며 “지난 15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시스템 업체로 성공한 유일한 회사”라고 강조했다.

 사실 하드웨어 사업인 컴퓨터 분야는 기술적으로 완숙 단계에 있어 창업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혁신적인 기술 없이는 자리조차 잡기 힘들다는 면에서 넷앱 성공의 의미는 크다.

그는 성공 비결을 기술 철학에서 찾았다. 바로 ‘단순함(simplicity)’이다. ‘간소할수록 좋다(less is more)’라고도 했다. “넷앱 제품은 하나를 알면 나머지 제품도 다 알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SAN· NAS· iSCSI 등 다른 제품도 모두 하나의 아키텍처·애플리케이션·관리 화면에서 작동합니다. 제품 상호 호환이 가능한 것은 물론입니다. 각기 다른 제품에 싱글 아키텍처를 제공하는 업체는 넷앱이 유일합니다”

 넷앱 비전도 단순함과 이어져 있다.

 넷앱은 싱글 아키텍처를 각기에 흩어져있는 자원을 가상화해 묶어 쓰는 ‘스토리지 그리드(grid)’ 아키텍처로 확장할 계획이다.

 그는 단순함과 함께 모든 비즈니스는 고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앱 기술진은 SATA 디스크를 기반한 스토리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SATA 디스크는 가격은 저렴하지만, 기업용으로는 안정성과 속도가 검증되지 않았거든요. 관련 마케팅 연구 자료도 없었죠. 그때 제임스 라우 기술 담당 부사장이 ‘고객은 가격이 저렴한 스토리지를 원하느냐’고 반문했고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넷앱은 업계 최초로 SATA 디스크 스토리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디스크 가격이 저렴해 신뢰성 높은 시스템을 구현하면 시장은 반드시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였다. 아이디어가 나온 지 6주 만에 제품 기획안이 나오고 이 제품은 1년 만에 넷앱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히트 상품이 됐다.

 경쟁사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스토리지 업계 강자인 EMC가 인수합병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운을 띄웠다. 하지만 넷앱은 EMC와는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EMC는 소프트웨어 업체로 가기 위해 인수 합병을 합니다. 실제로 EMC는 최근 몇 년간 20여 개나 넘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했습니다. 우리에게 인수 전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보다는 데이터 관리를 더 잘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고 업체를 찾습니다. 우리 기술과 호환성이 있는 지를 먼저 따집니다”

 2003년 클러스터링 솔루션업체 스핀네이커 인수는 스토리지 그리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고, 2005년 암호화 솔루션업체 데크루 인수는 데이터 보안성을 더욱 높이기 위함이었다는 설명이다. “어떤 업체를 인수하면 파트너 십을 맺어온 업체와 경쟁 관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파트너 전략은 가장 중요한 전략이니까요”

 그래서 워먼호벤 CEO은 99년 델과 OEM 계약이 최종 단계에서 결렬을 가장 아쉬워했다. 대신 그는 IBM과 장기 OEM 계약을 성사시켰다. 기술력을 인정한 IBM은 1,2종이 아닌 전 제품을 OEM해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 실리콘은 없다”는 말을 들려줬다. 70년대 반도체 업체들이 밀집하면서 탄생한 실리콘밸리에는 정작 반도체 공장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실리콘밸리 주도권은 HP와 같은 시스템 업체에서 오라클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로, 다시 e베이와 같은 인터넷 업체로 넘어왔습니다. 그 다음 주도권은 바이오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리콘밸리는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거듭하는 생명력을 지닌 곳이라는 점이지요”

 워먼호벤 CEO는 넷앱 창업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창업자와 다름없는 길을 걸어 왔다. 실제로 워먼호벤이 IBM과 NET CEO를 거쳐 넷앱에 합류한 것은 회사 설립 후 고작 2년이 지났을 때다.

  넷앱을 세계적인 시스템업체로 키워 낸 워먼호벤이 전하는 메시지는 실리콘밸리의 생태계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기업 만이 살아 남는다는 진리였다.

  써니베일(미국) =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