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사장(4)](https://img.etnews.com/photonews/0604/060424015353b.jpg)
(4) 해답은 가까운 곳에
하루하루 부질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제품 홍보에 온 힘을 쏟았으나 여전히 판매는 부진했다. 면 걸레를 사용한 게 문제였다. 마찰이 심해 바닥에서 잘 밀리지 않았고 빨래 후 수축이 심해 다시 끼워서 사용하기 어려웠다. 보완이 필요했다. 만들어 놓은 것이 너무 아까웠지만 이 제품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찾은 결론이 초극세사를 이용해 걸레를 만드는 것이었다. 면보다 훨씬 비싸고 마찰이 심했지만, 쉽게 세탁이 되고 물 흡수력이 좋을 뿐더러 수축 문제도 없기 때문에 마찰력만 줄여 주면 완벽한 제품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몇 달에 걸친 노력 끝에 초극세사만 세 겹이 들어가, 스팀이 나와도 바닥에 물기가 남지 않고 바닥에도 잘 밀리는 완벽한 패드가 탄생했다. 이제 대박은 시간 문제인 듯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예상했던 만큼 주문 전화는 걸려오지 않고 납품한 업체마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또다시 걸레가 문제였던 것이다. 고무줄을 이용해 걸레를 뗐다 붙일 수 있게 했는데 스팀청소기에 끼우기도 어렵고 또 청소 중간에 걸레를 갈 때마다 손을 덴다는 것이었다. 큰일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벨크로를 사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실제로 주부에게 고무줄 걸레와 벨크로를 부착한 걸레를 주고 시험해 보니 이구동성으로 벨크로 쪽이 편하다고 했다. 막대한 돈을 들여 다시 금형을 제작해 생산과 판매에 들어갔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승부였다.
“사장님 반품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걸 어쩝니까.” 한 직원의 불안한 목소리가 적막하던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사방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물건을 회수해 가라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너무 기가 막혀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벨크로 부착이 문제였다. 천으로 된 벨크로를 강력 접착제로 제품에 부착했더니 스팀으로 인한 습기와 열로 접착면이 쉽게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접착제로 붙인 후 나사를 끼워 보기도 하고, 구멍을 파 보기도 하며 갖은 노력 끝에 벨크로로 교체했지만 열에 의해 벨크로가 녹아내려서 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벨크로를 플라스틱에 직접 파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싶게 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었다. “여보, 우리가 해냈어. 보라고. 절대 안 떨어지잖아.” 마지막 실험 결과를 보고 남편이 탄성을 질렀다. 플라스틱에 벨크로를 직접 파서 끼워 넣었더니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최초로 완벽한 스팀청소기를 개발한 것이다. 이미 벨크로 제품을 구입한 고객에게는 모두 새 제품으로 교환해 드리기로 결정했다.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회사를 믿고 제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신용을 지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꿈꾸면서 나는 행복했다. 그것은 황홀한 꿈이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만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 좌절 속에서 나는 달콤한 미래를 설계하며 성취감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한경희생활과학이 있기까지에는 나, 한경희만의 끈기와 더불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고객과의 신뢰가 중심에 있었다고 감히 자신한다.
rhahn@steamclean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