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매치포인트

 정말 우디 알렌 감독 작품 맞아?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은 다시 한 번 감독의 이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애니홀’은 물론 그의 전성기 걸작 ‘한나와 그의 자매들’같은 작품도 그렇지만 ‘애니씽 앨스’등 70을 바라보는 이 늙은 수다쟁이 영감의 최근작을 봤다면 더욱이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의 최신작 범죄 스릴러 ‘매치 포인트’를 보면, 갑자기 보톡스 주사를 맞고 회춘한 것처럼 욕망에 파멸되어 가는 젊은 감각이 되살아 났음을 발견할 수 있다.

테니스 강사인 크리스(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의 욕망과 그 욕망이 일으키는 범죄를 다루고 있는 ‘매치 포인트’는, 요설에 가까운 수다스러운 삶의 철학 대신 절제된 영상 언어로 침착하고 힘 있게 주제를 드러낸다. 크리스는 자신이 가르치던 부유한 집안의 톰(매튜 굿)을 알게 되면서 그의 여동생 클로에(에밀리 모티머)와 사귀게 되고 곧 결혼한다. 그리고 거대 기업체를 거느리는 장인의 회사로 들어가 빠른 출세가도를 달린다.

신분상승에 성공한 크리스가 핵심 인물이지만, 그를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 톰의 연인이었다가 크리스와 육체관계를 갖게 되는 노라 역의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도 뛰어나다. 자신의 성공을 가능케 하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미모의 아내를 두고서도 배우 지망생인 노라에게 빠지는 크리스의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어쩌면 그는 신분상승을 위해 받아들여야 했던 자신의 비굴한 처지를 잊기 위해서, 그 보상심리로 노라에게 끌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위험한 외도가 자신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자, 그는 냉정하게 이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완전범죄를 꿈꾼다.

이 작품은 수다스러운 요설 없이도 우디 알렌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그 이상이다. 삶의 온갖 풍상을 겪은 이 노회한 감독은 인간 내면에 숨은 욕망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뉴요커 출신으로서 뉴욕을 너무나 사랑하는 우디 알렌 감독은 지금까지 그의 대부분의 영화를 뉴욕에서 찍었다. 그가 대서양을 건너 처음으로 런던에서 찍은 영화가 바로 ‘매치 포인트’다.

지적 위트와 패러독스, 시니컬 한 세계인식 등이 주특기였던 우디 알렌은 과감한 섹스(물론 감독 본인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범죄를 꿈꾸는 폭력적 살인을 차가운 이성으로 다루고 있다. 불필요한 묘사는 극도로 억제하는 대신, 캐릭터들의 중요한 심리 포착은 섬세하게 접근하는 우디 알렌의 강약 있는 연출은, 이 감독의 나이를 의심케 한다.

가령 크리스와 클로에가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크리스와 노라가 시선을 주고 받고, 처음에는 엇갈리던 시선이 점차 하나로 통일되기까지, 그리고 나중에는 여자의 집착으로 남자의 폭력적 광기가 분출되기까지의 묘사는 아주 섬세하다.

영화의 숨겨진 또 하나의 매력은 뉴요커의 눈에 비친 거대 도시 런던의 모습이다. 템즈 강가에 있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 세인트 제임스 공원, 거킨 빌딩 등 런던의 명소들이 아름답게 화면에 담겨져 있다. 영국 상류사회의 삶도 내러티브 사이에 절제된 톤으로 침투하여 알맞게 삽입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신흥국가 미국시민이 갖는 문화적 열등감도 포함되어 있다. 미술감독 짐 클레이의 열정어린 손 끝에서 무대 셋트로 재창조된 데이트 갤러리와 오페라 하우스 신은 너무나 아름답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 순이 프레빈의 남편이기도 한 우디 알렌은, 뉴욕 지성파 영화감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감독 데뷔한 이후 거의 매년 영화 한 편씩을 성실하게 만들어서 지금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주옥같은 30여편의 영화 목록이 쌓여져 있지만, ‘매치 포인트’는 그중에서도 이 노 감독이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젊은 열정으로 새롭게 도전한 중요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