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눈앞에 둔 2000년 10월 31일 일본에서 작은 쇼가 열렸다. 두 발로 천천히 걸어 나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춤을 추는 등 작은 재롱을 보여주는 쇼가…. 그것은 세 살 박이 어린아이도, 아니 원숭이도 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단순한 쇼는 이제껏 그 어떤 일보다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바로 그 재롱을 부린 것이, 인간도 원숭이도 아닌,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존재인 로봇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아시모(ASIMO), 역사상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자동차 회사로 이름 높은 혼다에서 장장 15년에 걸쳐 개발한 아시모는 ‘도구’라고 봤을 땐 그다지 쓸모가 있는 물건이라곤 할 수 없다.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면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람과 악수를 하거나 흐느적 흐느적 엉거주춤하게 춤을 추고 고작해야 작은 물건을 나르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는 공장에서 쓰이는 로봇팔보다도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아시모’를 보며 놀라운 찬사를 보냈다. 바로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상상했던 친구로서의 로봇이 현실 속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로봇이라는 개념이 처음 선보인 이래, 사람들은 남자 로봇, 여자 로봇, 아이 로봇, 노인 로봇, 동물이나 괴수, 심지어 변신하는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로봇을 상상해 왔다. 그 모양과 특징은 매우 다양했지만, 그들 모두는 반항을 일삼으며 인간을 죽이고 심지어 멸망시켜 버리기까지 하는 악당이었다. 아니, 악당이라기보다는 천벌을 내리는 존재 말하자면, ‘프랑켄슈타인 박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수많은 SF 작가 중에 이러한 견해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진정한 SF작가로서 과학적 상상력이 넘치던 그는 “식칼은 위험하지만, 잘만 사용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듯이, 로봇도 역시 잘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로봇 공학 3원칙’ 다시 말해 로봇의 법칙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로봇은 인간의 명령을 듣고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이 원칙은 이제껏 악마와 같이 그려졌던 로봇을 인간의 충실한 협력자로서 바꾸어 주었다. 인간을 대신해서 무거운 짐을 들고, 요리나 청소를 하고, 밭을 갈고 물건을 조립하며, 심지어 불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는 등 인간을 대신해 온갖 궂은 일, 위험한 일을 다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변모된 것이다.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인간을 구하고 돕는 일에서 기쁨과 같은 감정까지 느끼는 로봇. 그것은 무한정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정령 같은 존재라고 할까.
결국 로봇 공학(Robotics)을 탄생시킨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은 엄청나게 인기를 끌며 팔려나갔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로봇이 더 이상 ‘프랑켄슈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로봇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며 심지어는 만들려는 이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로봇은 잘만 쓰면 큰 도움이 된다”고 하는 아시모프의 발상은 이렇듯 대중에게, 그리고 다른 작가나 제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전에는 인간으로 변장하고 폭동을 일으키고(영화 ‘메트로폴리스’), 인간들에 반항하는(영화 ‘앨리타:로봇들의 반란’) 것으로 그려졌던 로봇들이, 이제는 훌륭한 시종이자 동료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마치, ‘스타워즈’의 주역인 알투(R2-D2)와 쓰리피오(C3PO)처럼 말이다.
한편,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데츠카 오사무’라는 사람이 아시모프 식의 로봇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후일 만화의 신이라는 명성을 듣게 되는 그는 아시모프와는 다른 관점에서 로봇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바로 ‘도구’나 ‘하인’으로서 만이 아니라, ‘친구’로서의 로봇이라는 개념으로….그는 10살 정도의 어린 소년처럼 보이는 로봇을 만들었다. 원자력을 사용한다는 뜻에서 ‘아톰’이라 불리는 이 소년 로봇은,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10만 마력의 힘을 갖고 악당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돕는다. 이러한 것은 아시모프의 로봇과 큰 차이가 없을 지 모르지만, ‘마음’을 갖고 있는 로봇으로서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서 놀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모험으로 가득한 ‘아톰’의 이야기는 만화책에 이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로봇은 ‘도구’이며 ‘시종’이지만, 한편으로 ‘인간의 친구’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게 되었다. 결국 ‘아톰’을 보고 자라난 이들이 ‘아시모’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고, 단순히 ‘일만 아는 효율적인 기계’가 아닌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놀 수도 있는 ‘인간의 친구’로서 다시 태어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괴물에 지나지 않았던 로봇. 그러나 상상 과학의 넓은 세계 속에서 그것은 램프의 정령과 같은 편리하고 유용한 기계로 변했고, 다시금 인간의 친구로서의 모습을 가지며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같은 작품에서 아직도 프랑켄슈타인 같은 로봇들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아톰’이나 ‘아이 로봇’을 통해 사람들은 로봇이 꼭 무서운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한 친숙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로봇은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들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형태의 로봇이 등장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아이로봇’에서, 그리고 ‘아톰’에서 우리들이 보고 느꼈던 것처럼 우리의 동료이며 시종, 그리고 친구가 될 것이다(그런 점에서 SF가 미래를 예견한다고 해도 좋을까? 아니, 그보다는 미래를 만들어내는 힘을 지녔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SF 칼럼리스트. 게임아카데미에서 SF 소재론을 강의 중이며, 띵 소프트에서 스토리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스페이스 판타지(http:www.joysf.com)란 팬 페이지로 유명하다.
- 그야말로 인간의 친구라는 느낌? ‘아시모’는 로봇 시대에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었다.
- 탄생의 해를 기념하여 다시 만들어진 ‘아톰’ 인간의 친구로서 활동하는 이 꼬마 로봇이야말로 ‘아시모’의 미래 모습이라 하겠다.
-수 년 전 개발된 구조용 로봇 T52 엔류. 쓸모로 생각한다면, 이런 로봇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 시체로부터 되살아난 괴물. 초기의 로봇은 모두 이런 존재였다.
-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 로봇은, 결국 ‘터미네이터’ 같은 작품으로 이어진다.
- ‘바이센테니얼맨’ 로봇 공학 3원칙을 통해 로봇은 인간의 충실한 시종이 된다.
- ‘램프의 지니’ 로봇은 이런 완벽한 시종의 모습을 실현해 주었다.
- ‘핸드메이드 메이’ 미소녀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녀가 실은 로봇 가정부인 것이다.
- 3대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적 상상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 영화 ‘아이 로봇’의 주역인 서니. 아시모프의 로봇 세계도 영화로서 재현되었다.
-‘스타트렉’의 주역 중 하나인 데이타 역시 논리적이고 충실한 로봇이다.
-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로봇들. 이들은 ‘스타워즈’의 주역으로서 활약한다.
-‘강철천사 쿠루미’ 여기에 이르면 이미 로봇이라기보다는 인간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 게 자연스러운 로봇. 그것이 바로 ‘아톰’이다.
- 벌레잡는 로봇 ‘호이호이’ SF의 상상력은 다양한 미래를 선보이고 있다.
<전홍식기자 pyodogi@sfwa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