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혁신체계(RIS)]기고-`한국판 실리콘밸리` 건설

◆김종갑 산업자원부 제1차관

“세상은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식·기술이 발전한 현대의 세계화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에서 판매한 제품에 대한 전화 애프터서비스를 인도에서 처리하는 데서 보듯이,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국가 간 상품·서비스·노동 이동의 장벽이 낮아지고 있으며 국제협력이 증가하는 데 비례해 국가주권의 범위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지역화는 오히려 더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이른바 세계화와 지역화의 공존현상(Glocalization)이다. 지역이 세계화 시대의 성장동력인 지식이나 기술을 창출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지리적 근접성을 바탕으로 기업·대학·연구소·지자체 등 다양한 혁신주체들이 네트워킹을 통해 공동학습을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지역혁신체계(RIS)라 한다.

선진국에서는 지역혁신의 성공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핀란드의 울루는 기업과 대학이 한 지역에 모여서 협력함으로써 지식주도형 발전을 이뤄나가고 있다. 이렇게 지역적으로 한 곳에 모여서 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클러스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혁신체계는 대학·기업·정부 중 어느 쪽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이 있지만 여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지역 내 우수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대학과 지자체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대학이 배출하고 이러한 인재가 기술개발 등 혁신활동을 해 나감으로써 지역기업과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지역혁신의 선순환 구도인 것이다. 실리콘밸리와 울루는 각각 스탠퍼드대학과 울루대학을 위시해 시스코·노키아 같은 대기업이 위치함으로써 클러스터로 발전할 수 있었다.

참여정부는 기업을 중심으로 대학·연구소 등 산·학·연 협력을 통해 지역에 지식과 기술 중심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쏟고 있다. 우선 굴뚝이 연상되던 산업단지에 두뇌기능을 보강해 산·학·연 혁신클러스터로 발전시키고 있다.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이 기술개발·마케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접한 대학의 교수, 기업의 마케팅 전문가와 연결해 기업의 애로를 해결하고 있다.

또 전국에 13개의 산·학협력중심대학을 선정해 지역기업과 대학 간의 협력모델을 확산해 나가고 있다. 이들 대학이 가족회사제를 운영해 재학생들이 가족회사에서 현장실습의 기회를 갖고, 기업은 우수한 학생에게 졸업 후 취업기회를 제공하는 등 대학과 기업이 긴밀히 협력한다.

지자체도 변하고 있다. ‘산업이 있어야 지역이 산다’는 믿음으로 지역산업을 일궈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진흥사업 초기만 해도 유행처럼 인기업종에 치중하거나 하드웨어적 산업에 관심이 많았으나 이제 실속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통영의 경우 작지만 매우 성공적인 지역 산·학협력 사례이다. 통영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립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과 협력해 양식진주 가공기술을 개발했다. 완성품 진주 가공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원주(原珠) 상태로 수출할 때보다 부가가치 측면에서 무려 4∼5배 이상을 벌어들이는 대박을 터뜨렸다. 다른 지역에서도 산·학협력의 성공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지역혁신체계 구축을 추진한 지 3년에 불과하지만, 그간 추진한 정책의 가장 큰 성과는 지역이 국가발전의 주체라는 의식을 갖게 됐고 산업을 중심으로 지역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점이다. 남은 일은 전국 모든 지역에 걸쳐 구체적인 성과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내 혁신주체 간에 학습하는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내 기업·대학·지자체가 함께 부지런히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정부도 산·학협력 모델을 확산하고 산업단지의 연구개발능력을 강화하는 등 정책적인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이런 노력이 쌓일 때 우리는 머지않아 수많은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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