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저녁,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가의 한 한국식당에는 손님이 꽉 차 있었다. 이곳에서 몇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김순희씨(52)는 “실리콘밸리 경기가 점차 나아지는 것 같다”며 “꾸준히 손님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IT경기의 심장부 실리콘밸리. 이곳에는 내로라 하는 글로벌 IT기업의 본사가 모두 몰려 있다.
구글·e베이·야후·휴렛패커드(HP)·선마이크로시스템스·인텔·시스코시스템스·애플컴퓨터·오라클 등 300개에 달하는 상장기업이 진을 치고 세계 IT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지식시대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중심이기도 한 이들 기업은 세계 IT경기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이곳 경기는 늘 세계인의 주목거리가 되고 있다.
50년대만 하더라도 과수원에 불과했던 실리콘밸리는 반도체·PC·인터넷 등을 잇따라 세상에 내놓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닷컴 버블이 꺼지자 휘청거리면서 경기가 급속히 나빠졌다.
실리콘밸리 경기에 대해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파견나와 멘로파크의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본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풍연 이사(42)는 “최근 시행된 캘리포니아 매춘 단속으로 먹고 마시는 산업이 일부 위축됐지만 실리콘밸리 전체 경기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의 속살을 직접 보면서 ‘이래서 이들이 세계 IT경기를 이끌어 가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국내 IT기업의 미국 진출을 돕기 위해 지난 2000년 4월 설립된 아이파크의 이종훈 소장도 “90년대 말 같은 호황이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리콘밸리 경기가 좋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경기가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곳에 있는 글로벌 IT기업의 최근 성적표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 언론인 새너제이머큐리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 있는 150대 상장기업의 2005년 총 매출은 3726억달러로 전년보다 10.8% 늘었다. 이는 4년 연속 성장한 것이다.
특히 구글·야후·e베이 같은 인터넷서비스 기업과 바이오 기업의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매출뿐 아니라 2005년 수익도 371억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18% 늘었다. 고용도 지난해에는 4년 만에 처음 증가세로 반전하면서 2004년보다 4.4% 증가했다.
그러나 모든 지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기업공개(IPO)가 그렇다. 작년 이 지역 IPO는 8건에 그쳐 2004년(25건)보다 크게 줄었다. 총 IPO 금액도 4억7000만달러를 기록하며 2004년(27억7000만달러)의 7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비록 작년에 실리콘밸리의 IPO가 부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였다”며 “여전히 실리콘밸리는 미국 IT산업의 중심지이며 차고에서 시작해 갑부에 이르는 꿈이 살아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기업 가운데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휴렛패커드의 한 관계자는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세계 IT산업의 젖줄”이라며 “앞으로도 실리콘밸리는 혁신적인 기술을 계속 선보이며 세계 IT산업을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이 지역은 특히 소프트웨어(SW) 기업의 부침이 심했다. 오라클·시만텍·어도비 등이 각각 피플소프트·베리타스·매크로미디어를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으며 상대적으로 인수된 기업들은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SW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벤처캐피털의 한 관계자는 “SW산업이 성숙기에 달해 올해도 이들 기업의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리콘밸리(미국)=방은주기자@전자신문,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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