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수 코아로직 사장(53·사진)이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은 한 가지, ‘최고가 되라’는 이야기다. 지극히 흔한 말이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최고가 돼야 한다는 프로의식이 황 사장을 키운 8할이었기 때문이다.
황 사장의 이야기는 1980년부터 전개된다. 만 27세였던 그는 삼성반도체를 거쳐 당시 금성반도체 연구원이었다. 그곳에서 통신장비를 개발하다 이대로는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그는 이미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었다. 최고가 되기 위해 가족의 희생을 각오해야만 했던 그의 결심은 미국 텍사스대학의 석·박사, GE 연구소, 현대전자 연구소장·사업본부장 등 화려한 이력을 만들었으며 코아로직의 기틀이 됐다.
코아로직을 설립한 1998년도 마찬가지였다. 코아로직은 설립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원들의 월급이 밀려본 적이 없다. 매출이 적어 허덕이던 시절에는 황 사장이 집을 팔아 직원들의 월급을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월급을 만드는 것이 프로다운 CEO의 역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이치로, 밤샘작업을 마다하지 않으며 개발에 열중하는 연구원들은 프로다운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코아로직이 매출 2000억원대의 국내 최대 팹리스 기업으로 자리잡은 2006년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최고가 되기 위해 코아로직은 사무실 인테리어부터 조직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팹리스 업계 최초로 미국에서 유명 컨설턴트를 스카우트했으며, 각 분야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실적이 높은 임원들을 과감히 승진시켰다. 코아로직은 아직도 성장단계에 있으며,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황 사장의 생각이다. 2010년까지 매출 10억달러(1조원) 규모의 팹리스를 만들기 위한 ‘10 by 10’ 실현을 위해 지금은 기반을 다질 시기다.
황 사장은 “그동안 급속히 성장했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린 기업이 너무 많다”며 “코아로직이 외부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은 확고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업계를 함께 키워야만 하는 시점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조용한 그의 성격까지 바꿔 놓았다. 말이 없기로 유명했지만, 이제 그는 업계 CEO 중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CEO가 됐다. ‘놀고 싶다’는 농담을 늘 던지면서도 ITSoC협회 회장사와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사를 수락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협력이 없으면 코아로직은 물론이고 업계 전체가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반 성장을 통해 매출 1조원의 회사를 만드는 것. 그것은 황 사장의 꿈이고 인생이다.
이러한 그를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다. 외국 기업의 코아로직 인수설이 그것이다. 세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합병 제안이 들어왔었고, 그것을 정중하게 거절한다는 것이 검토중인 것 같다는 오해를 낳아 버렸다. 그것도 오래 전 일이지만, 지금까지 현재형인 것처럼 그를 괴롭힌다. 그 오해의 뒷면에는 혹시 코아로직을 팔고 한몫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숨겨져 있어, 산업에 대한 황 사장의 애정을 몰라준다는 것이 서운하기만 하다.
황 사장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코아로직을 1조원 규모의 회사로 만들겠다”며 “이것은 업계 전반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며, 업계 전체에도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