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소재가 영화에 등장한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다. 그러나 ‘사생결단’은 지금까지 그 어떤 한국 영화보다 현장에 밀착되어 있다. 땀 흘리며 현장에서 길어올린 싱싱한 언어들이, 먼 바다의 체취를 풍기며 수산시장 바닥에서 끔틀거리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러럼 싱싱하다. ‘범죄의 재구성’이 접시를 돌리는 고수들의 삶과 언어가 현장에서 생생하게 채집되어 긴장감을 발산한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마약이라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소재를 육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액션 느와르 ‘사생결단’은 세상의 밑바닥에서 살기 위해 꿈틀거리는 사람들의 비장한 이야기를 비장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 우리 삶의 영역에서 비중을 확산하고 있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의 삶을, 게임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형상화 했던 의미 있는 영화 ‘후아유’를 만들었지만 대중성과의 접점을 찾는데 실패했던 최호 감독은 밑바닥에서 직접 길어올린 살아있는 언어로 생동감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비리 형사와 마약 중간상을 소재로 어두운 뒷골목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는 이 영화의 강렬한 생동감은, 현장에 밀착된 감각에도 있지만 황정민 류승범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에서 발산되고 있다. 오히려 연출이 너무 정직하다. 더 극단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강렬한 부분은 더 강하게, 서정적인 신은 더 말랑말랑하게, 연출은 진지하게 너무 공법적으로만 접근해서 드라마틱한 내러티브가 잘 살지 못했고 비장미도 약화된다.
그러나 배우들은 허구의 인물을 육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도경장 역의 황정민의 내공은 그가 이제 한국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3만명이 우글거리는 부산 유흥가의 황금시장을 ‘나와바리’로 하고 있는 마약 중간상 이상도 역의 류승범도 좋다.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그 바닥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마약상이 된 그가 지금은 갱생의 길을 걷고 있는 전설적 뽕쟁이 삼촌(김희라 분)과의 갈등을 빚는 부분이 더욱 섬세하게 묘사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각본과 연출의 2% 미진함에 기인한 바 더 크지만, ‘사생결단’은 두 배우들의 사생결단이기도 하다. 나는 황정민이 판정승했다고 믿는다.
물론 이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소재의 화려함이 주는 상투적 접근이 아니라 삶의 무게와 비장함을 진정성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더 중요하다. 문제는 이런 접근이 얼마나 영화적 긴장감을 갖고 완성도 있게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인데, 각본은 소재가 완강하게 구축한 외곽 방어선을 뚫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면의 핵심을 건져 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현장에서 채집한 소재를 얼마나 육화시켜서 생명력을 불어 넣는가 하는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소재의 강렬함이 오히려 상상력을 약화시켰다. 범속한 상투성도 눈에 띈다. 이종도와 삼촌의 관계는 혈연 가족주의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종도와 도경장의 관계는 단순한 악어와 악어새 이상의 의미 차원으로 확산되었다면 이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생결단’은 우리가 보는 그 자체 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진정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