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연임 실패 후 표류하고 있다.
KAIST 이사회는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학교 정관을 개정, 총장 후보자의 자격 조건을 완화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재계 출신 정치권 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며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다음달 총장 재공모에 나설 것이라는 루머도 나돌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톱10 대학 진입을 목표로 추진중인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총장 선임 어떻게 되고 있나=KAIST는 지난 이사회에서 총장 후보 자격 조건을 명시한 정관 내용 가운데 ‘과학기술원 내외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자나 재직한 경험이 있는 자’라는 문구를 전격 삭제했다. 지난 30년간 KAIST가 고수해온 총장 자격의 경계선이 무너진 것이다.
당초 유력한 총장 후보로 알려졌던 서남표 MIT 교수가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KAIST 이사회와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KAIST의 총장 위상에 걸맞은 인물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 총장 재공모설과 정치인 영입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서 교수가 끝까지 고사한다면 자연스럽게 재공모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초 다음달 초 개최 예정이었던 이사회도 지방선거 일정을 고려해 늦춰질 것으로 보여 KAIST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사회가 연기되면 총장 선출 일정은 아주 빠듯하다.
KAIST 총장은 선출위원회가 현 총장 임기 만료 3주 전에 후보자를 추천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6월 마지막 주에는 이사회가 열려야 한다.
KAIST 고위 관계자는 “KAIST 후임 총장에 정부의 관심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 측도 연봉에 신경쓰지 말고 러플린 총장에 걸맞은 위상을 가진 인물을 찾으라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도 위험=러플린 총장 사태에 대한 후유증은 KAIST 역점 사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KAIST가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를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6, 7월이 가기 전에 내년 예산규모를 확정지어야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과기부가 여전히 KAIST의 최근 사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다 이사들마저 ‘돌아 앉은’ 형국이어서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후시설 대체를 위한 신규 건축 사업은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황이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