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에 따라 유형의 반도체뿐 아니라 무형 자산인 반도체 설계자산(IP)까지 수출하는 시대가 됐다.
IP는 반도체를 설계·생산하는 전 과정에 걸쳐 가장 기술 집약적인 분야로, 해외에서는 ARM 등 IP 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급성장할 만큼 반도체 산업에서 IP 비중은 커지고 있다. IP는 반도체 상용화보다 최소한 1년은 앞서 개발·검증돼야 한다는 점에서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핵심 요소다. 해외에서 국내 IP를 인정했다는 것은 국내 기술이 산업을 이끌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왜 IP인가=반도체 생산성은 세계적으로 연간 21% 늘어나는 데 비해 집적도는 53%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사이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IP를 활용해 생산성이 집적도의 성장 곡선을 따라 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IP의 중요성도 커지는 것이며, IP의 부가가치도 상승하게 된다.
지난해 IP로 61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던 칩스앤미디어는 순이익 51억원을 달성해 84%의 높은 이익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IP의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 해당 분야의 시장이 성숙됐을 때 IP는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이방원 애트랩 사장은 “최근 무단 복제한 칩이 유통되는 것을 IP를 통해 막아냈다”며 “IP는 그 자체로도 부가가치를 낼 수 있지만 향후 시장 진입 장벽을 높여 안정적인 매출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IP 시장 현황과 수출 의미=2000년만 해도 10억달러에 채 못 미치던 세계 IP 시장은 현재 20억달러를 넘어 3년 후에는 지금의 두 배인 42억달러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비해 국내 IP 시장의 규모는 3500만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 시장의 20분의 1 수준으로, 그만큼 국내 IP 산업은 미숙한 상태다.
국내 반도체 벤처 업체들의 매출 총합이 1조원 규모에 이를 만큼 경쟁력을 갖게 됐어도 IP 분야가 미숙한 이유는 이미 개발된 IP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자체 IP 개발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IP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개발 투자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초기에 IP를 확보한 업체들은 국내 시장보다는 수출에 주력해야 한다. IP 관련 기관들이 업체의 IP 수출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은 국내 IP를 산업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유회준 SiPAC 소장은 “반도체 하나를 개발하는 데 100∼200억원 가까이 들어간다”며 “이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세계로 발을 뻗어야만 하며, 이러한 상황은 IP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IP 산업 활성화를 위한 과제=국내에는 쓸 만한 IP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 IP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개발된 IP를 검증할 방법이 없어 사용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IP 검증에 대한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이 거의 같은 시장을 보고 있어 같은 IP를 개발하는 데 중복 투자되는 것도 문제다. 또 제품이 인기가 없어 사업에는 실패하더라도 IP 자체는 사업화할 수 있지만 표준화되지 않은 설계 방법으로 인해 설계 방식 또한 사장될 때가 많다.
IP 상용화에 성공한 이후 수출길이 열렸다고 해서 무작위적으로 수출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IP는 무형 자산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업체에 IP를 넘기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지 알 수 없다. 해당 IP로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업체들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업체를 골라 수출해야만 한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