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강국으로 가는 길](6)해외 벤치마킹-루마니아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 전경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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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서 4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면 도착하는 곳. 루마니아의 국제공항이 있는 수도 부쿠레슈티다. 국제공항이지만 규모는 우리 지방 공항 수준이고 분위기도 무척 여유 있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다. 공항에서 도시로 진입하는 길목부터 굴착기 소리가 요란하다. 대규모 건축 공사가 진행중이다. 루마니아는 2008년을 목표로 이 곳에 산업 클러스터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제반 시설을 갖추고 첨단 빌딩을 세워 해외 기업을 적극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다.

 ‘동유럽의 작은 파리’로 불리는 부쿠레슈티에 들어서면 루마니아의 오늘을 그대로 보여 준다. 낡은 건물을 새롭게 개조하고 아예 새 건물을 짓기 위한 작업으로 도시 전체가 시끌벅적하다. 루마니아 특유의 유럽풍 건물과 이제 막 들어서기 시작한 현대식 건물이 변한 대조를 이룬다. 루마니아가 2007년 EU 가입을 앞에 두고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2004년 EU에 가담한 폴란드·체코·헝가리 등 다른 동유럽 국가에 비하면 늦었지만 루마니아는 EU 가입을 계기로 동유럽의 부국으로 새롭게 비전을 세우고 있다. 루마니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이제 2000달러를 넘어선 개발도상국이다. 뚜렷한 주력 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섬유·의류와 같은 1차 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독재정권 지배를 받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아직 불안정한 상태다.

 하지만 독재정권이 붕괴한 이 후 루마니아에는 자본주의 물결이 급속히 밀려 들고 있다. 현 바세스쿠 루마니아 대통령 주도로 해외 투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다양한 투자 유치법을 제정해 뒤늦게 외자 유치 경쟁 대열에 합류한 것.

 특히 루마니아는 정부 주도로 정보기술(IT) 분야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다. 경제 기반은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지만 인력·기술력 등 이미 기본 인프라는 갖춰져 있다. 이 가운데 소프트웨어(SW)는 ‘동유럽의 허브’를 꿈 꿀 만큼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시큐리티(정보보호)’ 소프트웨어 분야는 유럽에서도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도 나오고 있다.

 대표기업이 바로 ‘소프트윈’. 글로벌 통합 보안 기업인 이 회사는 지난해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 ‘빗디펜더 9.0’를 개발해 4대 국제 백신 인증 중 하나인 ‘AV 테스트’에서 기술력과 성능을 인정 받았다. 미국 IT전문지 ‘PC월드’와 함께 진행한 백신 성능 테스트에서 소프트윈 제품은 시만텍· 트렌드마이크로· 맥아피 등 총 10개 제품과 경합을 벌여 가장 뛰어난 바이러스 탐지와 치료 성능을 인정 받아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4년에도 또 다른 보안업체 ‘지캐드’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돼 화제가 되었다. 지캐드가 개발한 ‘원케어’는 안티 바이러스· 스파이웨어와 같은 보안 기능, 윈도 PC 전용 백업 기능, 복수 튠업 도구를 조합한 제품으로 MS는 이를 패키지 형태로 시장에 소개하고 있다.

 루마니아가 유독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강한 데는 탄탄한 ‘IT 인재 풀(Pool)’이 한 몫 했다. 지난 2003년 시장조사업체 브레인벤치 보고서에 따르면 루마니아는 동유럽 중 IT 전문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로 조사됐다. 루마니아는 매년 1만6000명에 달하는 IT전문가를 양성해 1만5000명 수준의 영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3위 불가리아 (8850명)를 무려 두 배 이상으로 격차를 벌려 놨다. 주목할 것은 루마니아 컴퓨터 보급률은 1000명 당 31명으로 EU국가 1000명당 304명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는 점.

 루마니아의 우수한 IT 자원은 독특한 인센티브 제도에서 나온다. 루마니아는 다른 산업 보다 2∼3배 이상의 높은 임금으로 우수 인력을 소프트웨어 분야로 유인하고 있다. 루마니아 직장인 평균 임금은 200달러 정도이며, 일반 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 보다 웹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IT전문직은 이 보다 2배 이상을 더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정부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 종사자에게 개인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방법으로 기업에 혜택을 주지만 루마니아는 독특하게 근로자 개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것.

 루마니아 현지 소프트웨어 기업인 소프트테크니카에서 마케팅을 총괄하는 알린 포페스큐 이사는 “IT업종에 종사하는 전문 엔지니어 임금 수준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을 뿐 더러 개인에게 세금 혜택을 줘 IT 분야에 우수 인력이 많이 몰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소기업의 법인세를 대기업에 비해 낮게 책정해 역동적인 소기업 활성화로 창업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IT 성장세가 높아 ‘IT 황금 어장’으로 불리고 있다. IDC 자료에 따르면 루마니아 전체 IT 시장은 지난 2001년 5억 3800만 달러에 이어 2003년에는 7억 6400만 달러, 올해는 1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시장 비중은 7대3 정도로 하드웨어가 높다. 하지만 점차 소트프웨어와 IT 서비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루마니아 IT산업을 견인하는 쪽은 정보통신이다. 2004년도 루마니아 정보통신 시장 성장률은 20.2%로 중부와 동구 유럽 국가들 중 가장 높았다. 지난 2003년 이 후 매년 15%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전체 시장 규모는 2007년 54억 유로에 이어 2012년 경 8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핸드폰 사용률도 60%에 달하며 3G서비스가 조만간 시행되는 등 기술 진보도 빠르다.

 루마니아 정부도 IT 인프라 구축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 2002년 전자 입찰 방식으로 정부 조달 물품을 구매할 것을 승인하는 등 정부 주도 정보화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루마니아 정부는 EU 지원을 받아 정보 시스템에 5100만 유로, 멀티미디어 콘텐츠 구축에 4000만 유로, 전자상거래에 3800만 유로, IT 인프라 구축과 기술에 1억 4200만 유로 등 IT분야에만 총 3억7000만 유로를 배정했다.

 국민대 김현수 교수는 “루마니아는 보안 분야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돋보인다” 라며 “정부 주도로 적극적인 IT 투자에 나서고 실용 교육과 인재 양성, 개인 인센티브 정책 등과 맞물려 조만간 동유럽의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떠 오를 것”으로 내다 봤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인터뷰-에밀 페트리스쿠 소프트테크니카 CEO

 “루마니아는 EU 가입을 앞두고 정부 주도로 경제 활성화에 ‘올인’한 상황입니다. 적극적인 정부 육성책에 힘입어 창업도 활발합니다. 소프트웨어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으면서 관심이 높은 분야입니다.”

 에밀 페트리스쿠 소프트테크니카 CEO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 사장이다. 교육 수준이 가장 높다는 부크레시티 국립 공대를 졸업하고 동료 3명과 함께 지난 해 ‘소프트테크니카’를 설립했다. 부카레스트 비즈니스 거리인 섹터 4에 위치한 이 회사는 모니터· 키보드 등 단말기에서 전자서명 애플리케이션까지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실 루마니아는 기업 관련 규제가 많이 완화됐지만 아직 창업에 제약이 많습니다. 게다가 국영 기업에 익숙해 창업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낮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고급 엔지니어는 창업 보다는 글로벌 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 만큼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공공 부분을 전산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IT 인프라 구축이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다양한 프로젝트도 쏟아지는 상황입니다.” 루마니아 가정 PC 보급률은 지난 해 8% 수준. 정부는 이를 2008년까지 10.4%로 높일 계획이다. 인터넷 사용률도 2008년에는 2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EU 가입을 앞두고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한 전자서명·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정부 주도 사업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우리와 인연이 깊다. 최근 루마니아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으며 한·루마니아 IT협력 양해각서까지 체결한 상태다. 한국은 루마니아 교역국 가운데 수출입 규모가 16위에 올라 있다.

 “루마니아 일반 시민에게도 코리아는 기술력 있는 강대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기아의 자동차, 특히 삼성 휴대폰은 가장 갖고 싶은 제품입니다. LG 모니터와 삼성 휴대폰은 루마니아에서도 점유율이 70∼80%에 달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습니다.” 에밀 페트리스쿠 CEO는 “아직 루마니아가 IT기술 면에서 코리아와 동등한 관계는 힘들겠지만 보안 소프트웨어, 기초 기술 등은 서로 협력할 분야가 많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