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유통업체는 항상 ‘가격 유혹’에 빠진다. 시장이 성숙기로 들어서고 기술 진보에 따른 신제품 수요가 뜸할수록 더욱 그렇다. 시장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조금만 가격을 낮춰도 바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용산 전자상가에 있는 한 유통업체 사장은 “시스템 시장에서 품질과 서비스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가격뿐이다. 그게 소비자의 요구다. 일부 업체는 적극적인 가격 정책으로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경쟁 제품에 비해 단돈 1만원만 낮춰도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지금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지금의 국내 시스템 시장은 신규 수요가 소진되고, 신기술·신제품의 시장 자극 효과가 미미해 대체 수요 창출도 부진하다. 진입 장벽 약화로 시장 내 업체가 난립하면서 공급 과잉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수요가 완전히 죽은 건 아니다. 보이지 않게 꿈틀거리면서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이전과 비교해 참담할 정도로 악화됐다. 한 마디로 ‘허장성세’ ‘외화내빈형’ 시장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 살 깎기식 가격 경쟁의 결과는 뻔하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으로 그야말로 단기 처방책이다. 가격 경쟁은 결국 출혈로 이어지고 악순환 구조를 정착해 산업계는 물론 시장을 더욱 냉각시킬 뿐이다. 김병원 한국후지쯔 대표는 “출혈을 무릅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은 시장을 과점 상태로 만드는 게 목적”이라며 “하지만 시스템 분야에서는 어떤 기업도 만만한 기업이 없어 효과는 극히 미지수”라고 말했다.
방법은 하나다. 사업 모델을 바꿔야 한다. 가격 하락에 따른 시장 자극 효과로는 부족하다. 오직 유통 쪽만 고민해서는 방법이 없다. 직접 판매를 포함한 온오프라인 등 모든 유통 채널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방식을 찾아야 한다. 불필요한 부문은 과감하게 아웃소싱으로 돌려 운영 효율성을 개선하고 제반 비용을 절감하는 것도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전처럼 무작정 재고를 안고 수요를 기다리는 방식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가격을 상쇄할 만한 부가가치를 고객에 주고 시장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 제휴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벤더(공급업체)와 함께 특정 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제품 개발을 추진하는 등 비즈니스 모델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유용석 한국정보공학 사장은 “시장이 어려워질수록 유통업체는 가격 압박에 시달린다”며 “가격에 몰입하기 보다는 그동안 쌓은 유통 노하우를 기반으로 수익 위주의 새로운 모델을 벤더·총판·대리점이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