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취임 1주년 맞은 김창곤 한국전산원장

[사람과 기업]취임 1주년 맞은 김창곤 한국전산원장

  “선생님, 어디 다녀오세요?” “어.. 그냥 어디 좀..”

1967년 5월 어느날 장수환 전 광운전자공고 교사(75)는 지방서 상경해 힘겹게 공부하는 자신의 반 학생의 자취방에 쌀 한 가마니를 몰래 두고 오는 길이었다.

집 앞에서 자신의 담임선생님을 맞닥뜨린 이 학생이 바로 지금의 김창곤 한국전산원장(57)이다. 정보통신부의 차관을 거쳐 지금의 전산원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김 원장은 한번도 그 날의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방에 들어와 보니 쌀 한가마니가 떡하니 있는 거에요. 주인집 아주머니가 일러주는 인상착의가 선생님이더라구요. 쌀가마니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던거 같아요.”

#따뜻한 카리스마

 김 원장은 고교 졸업후 어려운 집안 형편상 진학을 미루고 당시 체신청 초단파건설국에 전송기사보로 취업한다. 또래 보다 늦은 1970년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김 원장은 졸업 후 주경야독 끝에 친정격인 체신청에 들어 가기 위해 기술고시를 연속 합격(12·13회)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 원장에게는 고관 특유의 거리감이 없다는 게 주위 평이다.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그 때를 회고하는 김 원장의 입가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하다. 전산원장에 부임한 이후 김 원장의 ‘휴먼 경영’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원장과의 데이트’ ‘원장이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젊은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애써 해결해주려하는 것도 자신의 골깊은 유년 시절과 무관치 않다. 지난 연말 전직원들에게 비타민을 한 통씩 선물, 전산원 안팎서 ‘비타민 전도사’로 불리는 게 김 원장이다.

이는 모두 정성과 진정성이 없으면 형식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같은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의 신실을 다한다.

#전산원장 취임 1주년

 지난 11일로 김 원장이 한국전산원장에 취임한 지 꼭 1년이 됐다. 취임 직후 김 원장은 ‘유비쿼터스 사회 리더’를 전산원의 새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같은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조직역량 강화’라고 김 원장은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전산원은 정통부 산하기관 최초로 최근 대기업 수준의 선진교육체계인 ‘NCA 신교육제도’를 마련, 직원들의 핵심역량을 고도화시키고 있다.

실제로 37만원에 불과했던 직원 1인당 1년 교육비가 김 원장 취임후 95만원으로 배 이상 수직상승했다. 1인당 교육시간 역시 23시간에서 38시간으로 늘었다.

  “다 내 자식같아요. 여기(전산원)를 그만두고 나가 다른데 가서도 ‘역시 전산원 출신이야’하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려면 가르쳐야죠, 그것도 제대로. 그게 원장 마음이에요.”

김 원장은 특히 ‘군림하는 산하기관’이라는 평가를 들지 않기 위해 부임 직후 내부 반대에도 불구, ‘고객모니터링제’를 전격 도입했다. 이에 따라 작년말 전산원의 고객만족도는 전년 대비 8.4점 향상된 것으로 집계됐다.

김 원장은 최근 국회 파행에 따라 ‘한국정보사회진흥원’으로의 원 명칭 개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오는 6월 임시국회서 이 문제가 해결되면, 이를 계기로 일부 조직명칭 개정과 함께 다양한 혁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11일 오전. 전산원 무교청사 14층의 원장실에서는 부임 1주년이 된 이날도 어김없이 아침 간부회의가 소집됐다. ‘별다른 행사’는 전혀없고 직원들과 이날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게 1주년 이벤트의 전부라는 게 원장실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스승의날 때도 ‘별다른 행사’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아내 몰래 양복 상품권을 챙겨 뒀다”며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지은채 즐거워하는 김 원장의 얼굴은 지금도 여드름 가득한 얄개였다.

류경동기자@전자신문, ninano@

 사진=정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