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정보통신 분야의 적극적인 시장개방 확대는 물론 미국측이 자국내 통신규제체계를 우리나라가 수용하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특히 통신서비스 분야에서 ‘통신망 서비스 접근 및 이용’, ‘지배적 사업자의 의무조항’ 등에 관한 각종 현안이 제기될 경우, 우리나라로서는 크게 상이한 미국측의 규제체계와 조율이 불가피해 적지 않은 혼란도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미 FTA 정보통신 분야의 쟁점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당사자인 국내 업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협상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한미 FTA 통신협상 대비 정책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여타 상품·서비스 품목의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정보통신 분야에도 적극적인 관심과 대비책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정인억 KISDI 원장대행은 “최근 미국이 FTA 협정을 체결한 모로코·오만의 사례를 볼때 자국내 규제체계를 FTA에 그대로 반영해 상대국도 유사하게 따라오도록 종용하고 있다”면서 “한국으로선 일부 수용해야 할 부분도 있기 때문에 현행 법 제도의 정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미 FTA 협상은 지난 2월3일 첫 발표된후 내달 5일부터 9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1차협상이 예정되는 등 협상초기부터 빨라지고 있으며, 그동안 협상 우선순위에서 뒤처졌던 통신분야에서도 다양한 이슈들이 등장할 전망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정보통신 분야 쟁점 가운데는 특히 국내 통신 규제체계의 정비 등 법 제도적인 대응방안이 우선 떠올랐다. KISDI 측에 따르면 우선 미국은 자국 이동통신사업자를 국내 지배적 사업자 의무조항 범주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져 미국 이동통신사업자가 국내 시장에 진출할 경우, 현행 국내 법에 따라 SK텔레콤만 지배적 사업자의 규제를 받는 대신 자국 사업자는 의무조항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마디로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미국은 또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설비 보유 여부에 상관없이 타 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상호접속·설비공동사용 등을 제공하도록 협정문에 반영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 사업자가 국내 시장에 재판매 사업자 방식으로 진출하더라도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와 동일한 조건으로 상호접속 및 설비공동 사용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국내 법상 통신사업자가 해저케이블을 국내에 접속할 경우 기간통신사업자 허가가 필요하지만 미국측은 자국 사업자에 한해 예외적인 호혜를 적용, 각종 인허가 절차 없이도 해저케이블을 육양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이동통신 표준 등에서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기술선택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나 단골 메뉴로 거론된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제한(49%) 철폐,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등에 대해서도 미국측은 압박 수위를 높여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광철 정보통신정책학회장은 “FTA 협상을 서둘러도 곤란하고 무엇보다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면서 “협상 과정에서는 국내 통신서비스 규제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정비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하나로텔레콤 대표에서 법무법인 세종으로 자리를 옮긴 권순엽 변호사도 토론자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하나로텔레콤 CEO 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FTA 정보통신 분야 협상과정에서 미국측의 요구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 현행 규제체계의 손질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최소한의 국내 사업 보호장치가 있다면 통신쪽 시장개방은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고 통방 융합문제까지 함께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