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비티씨정보통신 사장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잠시 옛 생각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년 적자기업 비티씨는 6년 만에 반기 흑자로 전환했다. 18년 전 수습사원으로 입사해 줄곧 ‘비티씨’와 운명을 같이해 온 그의 감회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어요. 2년 6개월이나 구조조정에 매달렸으니까요. 1년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네요.” 김 사장은 2003년 하반기 CEO에 전격 발탁됐다. 비티씨는 그해 14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선장으로 교체 투입된 셈이었다.
지난 88년 설립된 비티씨는 처음에는 키보드 업체로 명성을 쌓았다. 99년에는 월 60만대를 양산하며 전 세계 키보드 시장의 8%를 장악하기도 했다. 2000년에 시작한 모니터 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년 만에 내수 시장점유율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이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매출도 1100억원대에 달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요즘의 디지털TV 시장과 똑같은 양상이 벌어졌어요. 대기업의 가격 인하공세가 시작되고, 중국산 저가 제품도 치고 올라왔어요. 매출은 늘어났지만 적자폭은 그만큼 커졌지요.”
2003년 7월 추락하는 비티씨의 ‘구원투수’로 투입된 그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300명에 달하던 직원을 100명으로 줄이는가 하면 양재동 사옥까지 매각하며 치열한 ‘생존게임’에 돌입했다. 해외 유통망을 정리하면서 매출은 ‘반토막’이 났지만 내실 다지기는 멈추지 않았다.
“정말 값 비싼 수험료를 치렀어요. 성장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나머지 조직 곳곳에서 누수가 일어나는 것을 몰랐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기업의 경쟁력은 자본력과 브랜드보다 조직역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중소업체는 절대 범용시장으로 가면 안되고 특화시장으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죠.”
그는 최근 비티씨가 부활의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된 것은 2년 6개월 동안 조직역량 강화와 시장 차별화를 끊임없이 추구해온 결과라고 소개했다.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19인치 이상 와이드 모니터, TV 겸용 모니터 등 대기업이 하지 않는 영역을 파고들면서 조금씩 활로가 열렸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컨버전스로 시장 변화는 갈수록 빨라져요. 우리는 이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아요. 조직역량이 감당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릴 때 조심스럽지만 과감하게 도전할 거예요. 다음달 DMB 겸용 내비게이터 시장에 새로 진출합니다. 2년 6개월 동안 추스른 조직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죠. 비티씨의 진정한 도전은 이제부터입니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