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NEWS 10주년 기념] IT 리더를 만나다①넷피아 이판정 이사장

“인터넷을 굳이 영어로만 접속해야 하나?”

남들 같으면 쉽게 넘겼을 이 의구심을 풀기 위해 넷피아 이판정 이사회의장(43)은 11년을 투자했다. 그리고 ‘열정’으로 점철된 긴 여정 끝에 지금은 영문주소만 가능했던 인터넷 주소창에서 하루 2,000만 회의 한글주소가 오가고, 한국, 터키, 일본 등에서 동시에 자국어인터넷주소가 서비스되는 알토란같은 결실을 거두었다.

자국어인터넷주소를 개발해 국내 처음으로 상용화한 배경에 대해 이 이사장은 “시대적 도전정신의 일환이었다”고 말한다. NIC Committee에서 활동하던 중 영문 도메인네임의 불편함을 절감했기에 한글을 이용한 인터넷주소를 실현한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도메인 사업에 정면 돌파하고자 자국어인터넷주소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글로벌화를 추진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한우물을 판 성과는 자못 묵직하다. 한글인터넷주소를 선보인 이래 약 25만개의 데이터베이스와 2,500만 명이 넘는 사용자 확보. 자국어인터넷주소 관련 국내특허 15건과 해외특허 4건 획득. 전세계 95개국에 자국어인터넷주소 글로벌시스템 구축. 지난해 약 300억 원의 매출 달성 및 아태지역 기술 성장 기업 199위에 선정. 자국어인터넷주소의 표준화 기초가 될 세계대회 개최 및 자국어인터넷주소(NLI) 컨소시엄 구성 등.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큰 호응을 보이며 찬사를 보냈기에 보람도 컸다. 일례로 지난 11월 넷피아를 방문한 러시아 국영 통신사 이타르타스 사장은 이 이사장을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고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주소창에 자사 이름을 러시아로 쳐봤는데 실제로 홈페이지가 뜨는 걸 보니 자국어인터넷주소의 중요성을 실감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이사장은 목표의 30%를 달성했을 뿐이라고 평가한다. 아울러 “나머지 70%는 자국어인터넷주소의 표준화와 글로벌 사업 확대, 유비쿼터스 시대를 맞이해 한창 준비 중인 ‘휴먼 어드레스’ 기술로 채워나갈 계획”임을 강조했다.

이 가운데 자국어인터넷주소의 표준화 작업은 상당히 진척된 상황이다. ITU의 표준으로 추진하자는 제의를 받은데 이어 넷피아 임원이 UN 인터넷정책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세계 표준화의 전망이 밝아진 것이다. 이에 힘입어 넷피아는 지난해 12개국에 추진한 상용 서비스를 확대해 올해에는 그리스, 칠레, 멕시코 등 30개국으로 대폭 늘렸고, 터키에서 거둔 첫 러닝 로열티의 성과도 대폭 확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매진하고 있는 휴먼 어드레스는 다가올 유비쿼터스 시대에 모든 기기와 인프라에 접목되어 컴퓨터의 복잡함을 해결해줄 기술이다. IP주소에서 영문도메인, 다국어도메인, 제3세대 자국어인터넷주소로 진화된 현 기술을 한층 발전시켜 자연어처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으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자국어인터넷주소를 국내 표준에서 국제 표준으로 올릴 자신감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고 피력하는 이 이사장. 그러나 그는 ‘북극탐험’에 비유할 만한 지난 11년의 경험을 되돌려볼 때 대한민국이 IT 선진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전제해야 할 점이 있다고 조심스레 입을 연다.

“처음 사업을 벌였을 땐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만든 인터넷 틀에 한국적인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사업을 진행하면서는 인터넷은 클러스터(Cluster) 게임임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지요. 누가 먼저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달렸으니까요.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가 국가적인 전략 차원에서 벤처기업의 신기술을 적극 지원하고 육성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이사장은 또한 ‘구글 어스(Google Earth)’ 서비스를 예로 들며 국내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묶여있을 수 있는 자원들을 민간 회사가 공들여 사업으로 성공시키는 사례들이 생겼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상장과 표창장으로 가득 찬 넷피아 접견실에는 이판정 이사장의 의지가 숨어 있다. 한켠에 걸려있는 ‘자국어인터넷주소를 세계 인류에게!’란 표어와 그 맞은편에 있는 ‘처음처럼’이란 액자가 그것. 철저한 시간 관리를 통해 넷피아의 세계화를 꾀하는 이 이사장의 모습에서 넷피아의 또 다른 도전이 기대된다. @전자신문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