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장비 업계가 중국 시장에서 흙탕물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지 시장 선점을 겨냥했다지만 심지어 1억원짜리 장비를 3000만원에 제공하는 사례마저 등장, 국내업계의 고질병인 해외 출혈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문에 DMB 종주국을 자처하는 한국 장비업계가 중국 시장에서 개화도 못한 채 공멸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인코더나 칩 관련 시장에선 지금이라도 제값 받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격경쟁 도 넘었다=지난해만 해도 국내에서 1억원을 호가하던 인코더 장비 가격은 지상파DMB서비스를 준비하는 중국 사업자들에게 30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실제로 모 업체는 올 초 중국 광둥성 지상파DMB 사업자인 ‘광둥 모바일 텔레비전 미디어(GTM)’와 계약 당시 3000만원대 중반에 인코더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기업 한 곳이 가격을 지나치게 낮추고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다른 업체들도 따라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지상파DMB 전용 인코더는 세계적으로 온타임텍·픽스트리·카이미디어 3개 국내회사만 개발에 성공했다. 이들 3사는 품질경쟁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앞다퉈 중국 진출을 시도하면서 손쉬운 방법인 가격경쟁을 택한 것. 한 관계자는 “다른 업체가 제품 가격을 내리니 우리와 접촉하고 있는 중국 사업자도 내려간 가격 수준으로 맞춰 줄 것을 요구하고 있어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다른 제품에도 악영향=초기에 제시했던 금액과 현재의 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면서 중국 사업자들이 국내 지상파DMB 관련 제품과 장비 가격을 믿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사업자를 만나고 온 한 관계자는 “초기에 지상파DMB 인코더 도입 논의를 했던 중국 관계자들은 엄청난 가격 차이로 배신감까지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은 칩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던 단말기 업체 한 관계자는 “한국 칩 업체가 중국 사업자들에 대한 공급가격을 국내에서보다 낮게 제시하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물량이 확보되면 가격을 낮춰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내 공급 가격보다 더 싼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국에 칩을 싸게 공급하게 되면 결국 이 칩을 채택한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들어와 국내 단말기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값 받는 풍토 마련돼야=그래도 DMB 장비의 해외수출은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인코더가 싼 값에라도 많이 보급돼야 단말기 등 후방산업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긍정론도 나오고 있다. 또 유럽형 휴대이동방송규격인 DVB-H 등 경쟁기술의 인코더 가격과 비교하면 지상파DMB 인코더가 비싸기도 하다.
하지만 제 살 깎기 식의 가격 인하로 전체 산업에 역효과를 불러 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DMB는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라며 “시장이 성숙하기 전에 가격을 지나치게 낮추는 것을 피하고 공정경쟁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전자신문, wing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