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품질을 높여라’
소프트웨어(SW)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와 SW업체들에 떨어진 화두다. SW의 품질향상 없이는 어떠한 정책적 지원과 화려한 마케팅으로도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한 국내 SW산업의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올 수 없다는 공감대의 발로다.
SW품질은 제품(product)·개발과정(process)·인력(people) 세 가지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가운데 SW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완성된 제품 이전에 품질을 평가해야 하는 필요에 따라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
◇SW품질인증이 시장 좌우=정보시스템의 규모와 복잡성의 증대로 인해 SW품질은 정보화 전체의 생산성과 직결된다. 이에 따라 SW품질관리를 위한 평가·인증 방안 마련 요구 및 품질관리 인력에 대한 수요도 증대되고 있다.
특히 국제적 공신력을 확보한 SW품질 인프라 구축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는 발주기관이 SW프로젝트 수주자에 대해 CMM과 CMMI레벨 인증 여부를 확인한다.
최승일 핸디소프트 이사는 “선진국은 물론이고 특히 미국 공공기관을 겨냥해 영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CMM, CMMI 상위레벨 획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SW품질 평가를 위한 국제표준의 보강·통합작업도 추진중이다. ISO/IEC JTC1 WG6에서는 기존 표준 ISO/IEC 9126(SW품질모델)과 ISO/IEC 14598(SW평가절차)을 보강·통합하는 새로운 평가 모델(ISO/IEC 25000)을 개발중이다. CMMI 역시 내용과 운용체계를 강화한 CMMI 버전1.2 보급을 추진 중이다.
SW품질 기술 개발 작업도 빠르게 추진중이다. 미국은 84년 설립된 SEI를 중심으로 CMM/CMMI를 비롯해 아키텍처 등 SW 품질향상을 위한 기술을 개발·보급중이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산하 SEC에서 산업계와 협력해 SW 공학기술을 연구·개발 중이다.
◇열세에 놓인 국내 SW품질=국내는 낮은 SW품질과 품질관리 역량의 부족으로 상당수 SW사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SW품질 개선 노력 역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 사장은 “한국에서 품질 100%는 일본 시장에서는 80% 정도에 불과한 사실은 국내 SW의 품질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또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세계적 SW품질 보증 기준인 CMM과 CMMI 인증을 받은 국내 SW업체와 시스템통합 업체 수는 각각 42곳과 29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외 전체 CMM레벨 획득업체 1940곳, CMMI레벨 획득 업체 515곳과 비교하면 각각 2%와 5%에 불과한 수치다. CMM과 CMMI 레벨 획득업체 가운데 상위 수준에 달하는 4단계 이상을 인증 받은 업체는 CMM 7곳, CMMI 3곳에 불과했다.
배두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CMM과 CMMI의 핵심은 조직이 역량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개발·관리·지원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면서 “이같은 체계를 갖추지 않은 기업들은 개발자에만 의존해 SW개발이 이뤄지고 개발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말했다.
◇SW품질 높여야=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 SW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SW 평가·품질인증을 위한 국가모델 정착과 SW평가·인증체계 구축을 통한 제도적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국가 모델의 국제 표준과 연계 및 상호인증을 통해 국내 SW 제품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야 한다. SW품질 전문 인력 확보를 통한 SW 제품·프로세스의 품질 및 신뢰성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무엇보다 개발업체 스스로 품질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한편, 각종 SW품질인증을 단순히 획득에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 개발과정에 내재화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윤태권 한국SW기술진흥협회 사무국장은 “CMM과 CMMI를 하나의 유행처럼 획득하기보다는 획득 이후 철저한 내재화를 통해 내부적으로 기술과 프로세스 개선효과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정책
최근 SW 업계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SW품질 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정부도 국내 SW 품질 향상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부의 SW 품질향상 지원정책은 크게 SW 공학기술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안과 SW 제품 품질 인증을 강화하는 것으로 나눠진다. 우선 SW 개발 프로세스 상에서 품질자체를 강화하기 위한 SW 공학기술 경쟁력 제고 사업에는 △국제 SW 품질인증 획득지원 △SW기업 기술수준 조사 △실용 SW공학기술 확산 지원 정책 등이 있다.
먼저 국제SW품질인증 획득지원 사업은 앞으로 CMMI(Capability Maturity Model Integration), SPICE(Software Process Improvement Capability Determination) 등 국제 SW품질인증을 획득하는 데 소요되는 심사비 50%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 뼈대다. CMMI, SPICE 등 국제적인 SW 프로세스 개선에 참여한 업체에 대해 최고 4000만원 한도 내에서 심사비의 50%를 지원한다. 지원 대상 기업은 중소기업기본법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으로 CMMI레벨 2, 3, 4 등급 인증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진다. 정통부는 올해 첫 사업으로 CMMI 인증을 진행하는 기업 12개 기업, SPICE도 3개 기업에 대해 지원할 계획이다.
둘째, SW 기업 기술수준 조사가 추진된다. 정부는 국내 전문가와 협력해 프로세스 품질평가 모형을 기반으로 국내 중소SW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뷰 및 설문조사 실시를 통한 기술수준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셋째, 실용SW공학기술 확산 지원 사업도 눈여겨볼 만 하다. SW개발자 간의 지식 및 경험을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국내 커뮤니티를 체계화하고 활성화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SW 공학기술 동향, 선진 SW 공학기술 전파와 확산 등을 위해 다양한 콘퍼런스도 개최한다. 정통부가 오는 6월 개최할 세계적 SW공학기술 콘퍼런스인 ‘SEPG 콘퍼런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SW 제품이 나온 후 품질 인증 강화를 통한 SW품질력 향상을 지원하는 정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GS 인증 획득 제품을 공공기관에서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정통부는 이를 위해 최근 중소 SW기업의 시장참여 기회 확대를 위해 공공 SW사업자 선정 평가항목에 중소기업 GS 인증제품 적용 여부 및 규모 등을 신설·반영하는 ‘SW 기술성 평가기준’에 관한 고시를 개정, 시행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SW 기술성 평가기준 대항목 중 전문 업체 참여 및 상호 협력 부문의 배점을 기존 10점에서 15점으로 늘리면서 GS 인증제품 적용 여부 및 규모에 5점을 배점했다.
◆인터뷰-이단형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 회장
“SW 개발 프로세스 전 과정의 효율화가 이뤄져야 SW품질 향상이 가능합니다.”
이단형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 회장은 “최종 결과물로 나온 제품 품질만 따져가지고는 SW의 좋은 품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면서 “제품을 만드는 전 과정 전체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좋은 품질의 제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단순히 개발 담당자들만이 관심을 가져서 될 문제는 아니며, 전체 직원이 좋은 개발 프로세스를 따라 갈 수 있는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 제품 중 좋은 품질을 갖춘 제품도 많지만 전반적으로 국력에 비해 품질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글로벌 제품과의 경쟁 대신에 국내 제품끼리 경쟁을 하다보니 품질경쟁력이 뒤처지는 현상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이 SW 품질향상을 위해 제시한 방안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숙련된 인력이 배출되고 조직에서 이 인력들을 중심으로 품질을 중시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은 무조건 빨리 만들자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분야에서 품질경쟁력이 떨어지는지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좋은 방법론과 기술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품질향상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인 개선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게 되면 결국 좋은 품질의 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회장은 정부의 역할로 “경쟁력 있는 인력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천적으로 높은 개발능력을 갖춘 인력이 많이 나올 때 SW 품질 향상이 따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업체의 노력이 가장 큰 해법이다”고 밝힌 그는 “정말로 자사 제품 품질이 세계적인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앞장 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미 SW품질향상을 위한 방법은 나와 있습니다. 실천이 문제입니다. 당장 어려움이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생각으로 글로벌 시대에 맞는 SW품질향상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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