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의 지적 게임을 시도하는 영화의 계보에 ‘모노폴리’는 속해 있다. 물론 대중성은 약하다. 영화를 통해 상처 받은 삶을 위로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일상적 삶에서 벗어난 극장 안에 들어와서까지 긴장된 시선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응시하거나 아니면 두뇌를 활발하게 움직이며 퍼즐 게임을 풀듯 내러티브 속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히치코크의 영화가 그렇듯 복잡하게 헝클어진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얻는 지적 쾌감이 본질적 깊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연출자는 미로를 헤매는 사건 자체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마무리하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내러티브의 외적 구조에 연출적 관심이 집중되기 쉽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메멘토’ 혹은 ‘쏘우’나 ‘식스 센스’ 처럼 관객과의 지적 두뇌 게임에서 우위를 확보한 영화들이 갖는 공통점은 단순히 의외의 반전이나 예기치 못한 사건 전개만은 아니다. 사건을 끌고 가는 것은 결국 캐릭터다. 헝클어진 사건 속에는 헝클어진 인생에서 상처 받은 인간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런 캐릭터의 매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거품 같은 이야기가 된다.
이 작품은 한국 영화의 지형도 안에서 매우 이색적인 영역을 점령하고 있다. 스릴러이면서 범죄 영화이고, 동성애 코드가 중요하게 활용되기도 하며 마지막 10분을 보지 못하면 영화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결말의 반전이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건은 카이스트 출신 천재 컴퓨터 해커였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금융전산망 관리자로 변신한 경호(양동근 분)가 미국 입양아 출신 성공한 사업가 존(김성수 분)의 매력에 빠지면서 그의 계획대로 전국민의 1억개가 넘는 계좌에서 각각 소액을 인출해 5조원이 넘는 돈을 만들어 빼돌리는 것이다.
국정원은 용의자 경호와 앨리(윤지민 분)를 체포해 배후를 추적한다. 하지만 이미 돈은 제 3자인 존에 의해 사라져 버린 상태다.
도입부 시퀀스가 끝나면 국정원 수사실에서 최면술사를 동원해 경호의 고백을 받아내는 과정이 플래시백으로 전개 된다. 갓난아기 때 성당 앞에 버려져 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외롭게 자라난 어린 소년 경호가 빠져드는 것은 컴퓨터 게임과 액션 피겨 수집. 경호는 외부 세계보다는 자신만의 내적 세계로 침잠하면서 소형 캐릭터 인형인 액션 피겨들과 대화한다.
무생물인 피겨들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경호의 모습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끈끈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경호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대한민국 금융전산망을 움직이는 뛰어난 컴퓨터 실력의 소유자 경호에게 접근하는 존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경호는 동성인 존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의 계획에 참여하는데, 존의 여자로 등장하는 앨리는 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여자지만 경호에게는 은밀한 관심을 보인다.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기묘한 트라이앵글은 사건의 핵심적 전개를 뒷받침해 주는 일종의 서브 플롯이지만, 본질을 흐리게 하는 연막의 작용도 하고 있다.
하지만 ‘모노폴리’의 단점은 배우들의 호흡을 철저하게 일치시키지 못한 연출에 있다. 너무나 특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세심한 일상성의 복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우들에게서 우리가 삶의 거친 땀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은 허구적 구조물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스릴러 장르 안에서는 쉽게 찾아 보기 힘든 지적 두뇌싸움의 ‘모노폴리’가 상업적 리스크를 안고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한 시도는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