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 팹리스를 주목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은 국내 팹리스를 ‘자신들의 핵심기술을 지원하는 주변 제품을 하청 설계하는 업체’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 업체들이 점유하고 있는 시장과 함께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도 흡수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M&A 대상으로 접근하고 있다.
얼마 전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가 미국 아나로그디바이스에 매각됐지만, 인티그런트 측은 이번 일이 외국계 기업이 인수의사를 밝힌 것으로 처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난 해부터 꾸준히 RF 기술을 필요로 하는 해외 대기업들이 인수를 문의해왔고, 협상 논의도 진행한 바 있다.
멀티미디어 칩 전문 업체인 엔비디아도 국내 휴대폰 시장 공략을 위해 국내 멀티미디어 칩 업체 인수를 추진했으며, 인수는 불발로 그쳤지만 국내 업체들과 아직까지 교류를 하고 있다.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멀티미디어와 RF 부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애플리케이션으로 보면 휴대폰·디스플레이에 이어 DMB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주목을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국내 업계는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을 만큼 국내 업체들의 기술력이 성장했다는 방증’이라며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다. 또 글로벌 기업의 국내 R&D 센터와 마찬가지로, 해외기업의 한국 팹리스 M&A도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력을 전수받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이는 외국계에 M&A가 되더라도 국내 대기업을 공략하기 위해 국내에 기술진이 그대로 남아있을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전자와 금성반도체 출신들이 대거 쏟아져 국내 팹리스 산업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의 국내 팹리스 업체 인수에 우리업계가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첫 번째로, 완성품의 핵심기술이 반도체에 모두 녹아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통신·모바일분야 반도체는 타 분야에 비해 국산화율은 물론, 국산 기술의 경쟁력이 매우 높다. 국산화율이 높아지면 맞춤형 제작도 가능해져 독특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이 나올 수 있게 된다. 해외 기업에 인수되는 것은 결론적으로 국산화율을 낮추는 요인이 되기 때문,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팹리스 업체들은 정부의 핵심 기술 국산화에 대한 의지로, 대부분 정부의 개발자금을 받아 성장의 기반을 다진 업체들이다. DMB 부문에서는 국산 고유 기술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업체들이 이러한 정책의 혜택을 많이 봤다.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기업의 M&A는 시장 과점을 위해 추진하는 전략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원 수석연구원은 “95년부터 최근까지 해외 50개 업체들을 조사한 결과,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산업일수록 시장점유율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한국기업도 글로벌 경쟁구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업체들까지도 국내 시장에서 M&A 작업을 추진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끼리의 M&A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됐다. 국내 업체간 M&A는 위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M&A는 갈수록 비대해 지는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협력’을 통해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으나, M&A를 긴박하게 추진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