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아픈 기억 하나가 있다. ‘IMF’다. 그 시절 대우그룹 출신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금 대우 과장급 이상 보직자는 다 안다. 얼마나 서럽고 아픈 기억이었는지를. ‘대우 사람’을 만나기는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정재훈 대우전자서비스 사장을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만났다. 수시로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거의 반쯤 넋이 나갈 정도였다. 1600여명의 전문인력을 거느리다 보면, 그것도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창구이다 보니 이런 일 저런 일이 많을 터였다.
“대우일렉서비스의 모태는 1967년 대한전선 가전 서비스에서 출발합니다. 39년 전통을 가진 기업이죠. 최근에는 가전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정보통신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모기업 대우 제품뿐만 아니라 외국계 가전기업, 국내 중소 유망 벤처기업 제품도 AS를 하고 있습니다.”
대우일렉서비스는 전국에 7개 지사가 있다. 직영서비스 센터만도 66개에 이르고, AS엔지니어가 1600여명, 서비스 차량만도 1500대에 이르는 방대한 조직이다. 전국 통합 콜센터, 인력 양성을 위한 네 개의 직업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승창 대우일렉 사장님을 취임 이후 만났습니다. 오히려 외국계 경쟁업체나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확대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대우일렉의 마케팅 강화 방향이 대우일렉서비스 사업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대우일렉서비스는 분사 이후 2000년까지 매출감소라는 악재를 겪는다. 혹독한 ‘대우’ 후폭풍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조직이 슬림화되고, 대우일렉 가전제품 생산이 줄고, AS 제품도 현저히 감소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든다. 대우일렉서비스는 사람을 줄이기보다는 조직을 유지하면서 매출을 올리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첫 번째 목표는 외국계 업체였다. 브라운·테팔·필립스 등 굵직한 업체들이 고객사로 들어왔다. 대우 AS 품질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제품력은 있으나 AS가 뒷받침되지 않은 국내 업체가 많습니다. 자체 AS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보다 대우일렉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더욱 저렴합니다.”
정 사장은 기어코 일을 냈다. 지난해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주는 고객만족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다른 회사 제품 AS를 수주하려면 그만큼 서비스 품질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오랜 고통을 견딘 뒤에 얻은 값진 결실이었다.
한국코닥은 대행계약을 한 지 1년 만에 자체 서비스망과 이원화하여 운영하던 서비스 업무 전체를 이관했다. 대우일렉서비스 엔지니어는 가정 방문 후 하나의 제품을 수리하면, 다른 제품 이상여부를 확인한다. 정 사장이 자주 강조하는 대목이다.
“대우일렉서비스 목표는 ‘CS Global No.1’입니다. ‘고객에게 감동을, 직원에게 보람을 주는 최고 수준의 서비스 전문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경쟁회사의 제품에 대한 AS를 하겠다는 발상, 그것은 ‘세계경영’을 주창하며 글로벌을 주도한 전형적인 ‘대우사람’을 닮았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사진=정동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