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닷컴열풍의 한복판에서
돌이켜 보건대, 사업을 운영하면서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게는 중요한 시기마다 적절하게 ‘운’이 따라주었고, 이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 가장 주효했던 것 같다.
1998년 12월 도메인등록대행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이듬해인 99년은 사업이 안정적인 초석을 다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사건이 생겼다. 그 유명한 ‘엑슨모빌닷컴’ 도메인 스쿼팅 사건이 그것이다.
1999년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회사 엑슨이 당시 4위 규모의 석유회사 모빌(Mobil)을 흡수합병해 엑슨모빌(ExxonMobil Corporation)로 사명을 변경, 세계 최대 석유회사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됐다. 바로 이 합병에 가장 큰 복병으로 떠오른 것이 도메인이었다. 합병회사의 이름 도메인인 ‘exxonmobile.com’과 ‘exxon-mobile.com’이 한국인에 의해 미리 선점돼 있었던 것. 당시 이 도메인들이 반드시 필요했던 엑슨모빌은 거액을 주고 도메인을 사들였다.
이 일화가 언론상에 ‘인터넷의 봉이 김선달’로 알려지며 국내에선 도메인 등록 열풍이 불었다. 밀려드는 도메인등록 신청으로 전 직원이 도메인등록 업무에만 전념했다. 매일 야근하는 힘든 일상이었지만 입금자가 통장 하나 분량을 넘길 때는 푸짐한 삼겹살 회식으로 자축하기도 하고, 새벽별을 보며 퇴근할 때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어느덧 하나의 사업부문이었던 도메인등록이 회사의 전 업무가 되면서 새로운 고민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 국내 도메인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후이즈’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시장의 선점자로서 언론보도와 과감한 광고를 통해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해 놓은 후이즈의 1위 자리를 탈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중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2000년 11월 등록이 개시되는 한글닷컴이 그것이다. 가비아는 한글닷컴 등록에 사활을 걸기로 했다. ‘한글.com’은 영문과 숫자로만 등록이 가능했던 닷컴 도메인을 한글로 등록하는 것으로 인터넷 및 도메인의 대중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등록대행업체가 아닌 ICANN으로부터 인증받은 공식 레지스트라가 되어야만 했다. 물러설 수 없었다.
당시 한글닷컴 등록에 맞추기 위해서는 불과 4개월여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었다. 업무담당자들과 영문계약서와 관련 서류를 들을 만들고 등록 프로그램을 손보느라 밤을 새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7월에 준비에 들어가 8월에 서류 통과, 9월에 기술 테스트(OT&E) 통과하면서 드디어 ICANN 공식 레지스트라로 인증 받게 됐다. 당시 닷컴 레지스트리인 베리사인사의 담당자에 의하면 이는 역대 최단시간 통과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과들을 발판 삼아 당시 주요 포털들과 제휴 페이지를 운영해 도메인 등록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마침내 가비아는 한글닷컴의 국내예약등록 성공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이 같은 등록실적을 통해 고객들과 언론들도 주목하기 시작, 비로서 가비아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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