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독립 선언, 우리는 세계로 간다.’
최근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부각되며 메모리 카드 리더 제조업체인 세인정보통신(대표 권오진 http://www.sain.co.kr)이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세인정보통신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을 비롯한 미국의 HP·델·애플 등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메모리 카드 리더의 기반이 되는 직렬연결방식(ATA) 인터페이스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폭발적인 매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9년 창업 이후 7년간 ATA만을 고집해온 집념이 결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뭐든지 우리 손으로’ 기술 자립 추구=한때 파산 직전까지 내몰리며 내홍을 겪기도 했던 세인정보통신이 기술 독립선언을 하고 연구원 5명으로 1년 6개월간 밤을 낮 삼아 기술 개발에 매진, 독자적인 ATA 방식의 플래시메모리 카드 리더 컨트롤러 칩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독자 기술이 없을 경우 시장에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그것이다.
초기 기술력이 부족해 디지털시그널프로세서(DSP)의 코어를 ETRI 출신 벤처기업으로부터 빌려 쓸 수밖에 없어 자체 펌웨어 구동 기술을 접목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계기로 세인은 8051이라는 8비트 CPU보다 성능이 갑절 이상 뛰어난 16비트 CPU인 ‘RISC’ 코어를 직접 설계, 플래시메모리 카드에만 전문적으로 쓸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세인은 연달아 카드 리더 칩을 설계하고 USB2.0 카드 리더 칩 등을 100% 독자 보유하게 됐다. 올해 말까지 자체 RISC CPU 기술을 기반으로 ATA-7 표준 스펙과 USB2.0 OTG(On The Go) 스펙을 집적하고 플래시메모리 카드 리더 기능을 통합한 새로운 원칩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창업 후 5년간 가시밭길=메모리 카드 리더 장치를 발판으로 오늘의 세인을 이룩하기까지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당시 3.5인치 FDD가 사양길로 접어들고 USB와 ATA 방식 중 하나가 뜰 것이라는 예측만을 믿고 기술 개발에 나서긴 했지만 시장이 열리지 않은 상황인데다 국내에선 관련 부품을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던 시절, 화교가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 시장을 뚫고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당시 보잘것없던 세인에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특히 자금난으로 곤욕을 치르던 2001년 모든 금융계가 자금 대출을 외면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술신용보증기금이 기술을 믿고 투자해줘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권 사장의 아픈 기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디스크 컨트롤러 칩을 제작하는 대만 업체가 우리 기술을 탐내 완제품은 자신들이 만들고, 기술만 제공하되 연간 100만개 이상을 반드시 수입해야 한다는 황당한 계약 조건을 제시, 서러움을 겪었습니다. 힘없는 벤처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죠.”
◇‘세계 시장 석권의 그날까지’=권 사장은 이제야 길이 보인다고 했다. 지난 2001년께 국내 대기업을 찾았다 면박만 당하고 스펙 지원을 받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HP·델·애플 등 다국적 기업들도 ATA 방식을 외면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국내 대기업이 대만에 관련 제품을 요구하고, 주문이 돌고 돌아 세인까지 연결되는 것을 보고는 기업들의 속성을 이해하게 됐다고 권 사장은 말한다.
권 사장은 “이 과정에서 ATA 인터페이스 기반의 카드 리더 기술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기존 PC가 아니라 DVD리코더 등의 임베디드 시스템 분야에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세인도 ‘외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핸즈프리가 뜰 때 세인의 기술력이라면 제작에 1개월도 안 걸린다는 판단에 따라 잠시 한눈을 팔다 바로 접었다. 역시 본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세인은 LG전자의 DVD리코더, 타임머신 TV 등의 컨버전스 제품과 삼성전자의 블루레이 DVD플레이어 등에 매년 100만개 이상의 칩을 공급하고 있으며 르노삼성자동차에 장착되는 내비게이터나 새로운 PDA 플랫폼에도 칩 공급 협상을 진행중이다.
지난 99년 10월, 자본금도 구하지 못해 개인 사업자로 출발했던 세인정보통신의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원이다. 계약을 앞두고 있는 중국 하이얼과 일이 잘 풀리면 매출 200억원 달성도 무난할 것이라는 게 권 사장의 귀띔이다.
*기업경쟁력
‘직원들을 가족처럼 신뢰하고 대우하는 회사.’
세인정보통신의 저력이 발휘되는 원천이자 모토다. 이를 기반으로 세인정보통신만의 ATA 인터페이스 방식의 플래시메모리 카드 리더 칩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설계해 냈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끼는 인적 자원 관리가 세인의 경쟁력인 셈이다.
재능있는 인력도 많지만 직원들이 자신의 일처럼 밤을 새우며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모듈을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동기 부여야말로 오늘의 세인이 있게 한 기반이었다.
동기 유발을 위해 세인은 모든 직원들에게 액면가로 주식을 배분했다. 적게는 400주에서 많게는 1000주까지 나눠줘 주인의식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 세인은 조만간 우리사주 제도를 공식 시스템으로 도입할 방침이다. 들어오는 직원들이 자동으로 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할 계획이다.
우리사주 시스템은 한 때 세인이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핸즈프리를 생산해야만 했고 일본 올림푸스 카메라의 카드 리더 핵심 칩을 40만개 납품해야 했을 때 4개월간 직원들 모두가 ‘끔찍한’ 경험을 한 뒤 회사 내부 방침으로 굳어졌다.
이와 함께 최소의 비용으로 마케팅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동종 업계와 제휴하는 ‘크로스 마케팅’개념을 도입한 것도 세인만의 독특한 경영 시스템이다.
그래서 세인에는 마케팅 인력이 따로 없다. 기술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권 사장의 판단 때문이다. 특히 주력 제품을 만들어내기도 일정이 빠듯한데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고 옆길로 샌다면 회사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봤다. 이 때문에 세인은 ‘외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광수 이사는 “당시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20여명이 한마음이 되었던 가족 같은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끄는 사람들
세인정보통신은 권오진 사장과 이광수 이사, 윤일현 부장 등 창업 멤버 세 명이 주축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직 ETRI 연구원들이 지난 94년 창업한 쎄트리연구소 출신이라는 점이다.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권오진 사장(41)은 과학기술대(KAIST의 전신) 1기 출신으로 반도체 분야가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 3학년 때 그만두고 학원 강사 등으로 나서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난 94년 쎄트리연구소에 공채 1기로 들어가 다시 칩 설계를 공부했다.
늦깎이긴 하지만 광통신 다이오드 모듈과 신경회로망 설계, MP3 플레이어 등 분야에서는 막히는 게 없는 베테랑이다. 세인 창업 당시 이 이사, 윤 부장이 CEO를 제안하자 연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CEO를 수락했다.
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이광수 이사(43)는 권 사장과 쎄트리연구소 입사 동기. 이 이사는 시스템 설계 업체서 5년간 일하다 능력을 인정받아 쎄트리연구소에 특채된 케이스다. DSP의 개발 환경, 155Mbps 위성 모뎀 분야에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ATA 및 USB 방식의 카드리더 펌웨어 분야에서는 다국적 기업들도 실력을 인정할 만큼 세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세인의 연구 분야를 총괄하며 임베디드 시스템의 프로그램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유일하게 경영진에 포함돼 있는 윤일현 부장(33)은 쎄트리연구소 입소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 입학 지원을 한 상태서 스카우트됐다.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2003년부터 세인에서 플래시메모리 카드 칩 등을 설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도 윤 부장의 칩 설계 능력에 깜짝 놀랄 정도로 기술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한밭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인에서는 기술 마케팅을 도맡아 하고 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