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다국적 기업 내에서 한국법인의 위상이 급상승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자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시장 자체가 커진 것이 배경이지만, 한국법인이 기술 및 생산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며 다국적기업 타국법인에 발전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더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일부 다국적기업은 한국법인의 사업모델을 그대로 해외에 이식하기로 결정하는 등 한국법인이 다국적 기업의 핵심으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세계적인 반도체 후공정 전문 기업 ASE의 한국 법인인 ASE코리아(대표 맹상진)는 올해 자사가 직접 운영하는 중국지사를 설립한다.
ASE는 대만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 당연히 중국지사 및 공장 설립은 문화와 언어가 같은 대만본사가 맡아야 하지만, 이를 ASE코리아가 전담키로 한 것이다. 이는 반도체 후공정에 관한 ASE코리아의 기술력과 생산 관리 능력, 경영 성과 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ASE코리아는 내년 하반기 중국 공장 가동을 계기로 한국법인과 직접 운영하는 중국지사 매출을 합쳐 2010년 1조원을 달성한다는 비전을 수립했다.
한국쓰리엠(대표 마이클 로만)도 제1 공장인 전남 나주 공장에서 보여준 생산 기술력을 바탕으로 본사 내에서 확고히 입지를 굳히고, 제2 공장 투자를 이끌어 냈다. 각종 산업재를 생산하는 나주 공장은 빡빡한 일정을 가장 정확히 맞추는 공장으로 정평이 나 미국 본사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공장까지 증축했으며 지난달 6공장을 준공하고 7공장까지 추진중이다. 올해만 500억원의 투자가 나주 공장에 집행된다. 경기도 화성에 아시아를 겨냥한 1억4000만달러 규모의 산업 안전재 공장을 짓기로 한 것도 나주 공장에서 검증된 한국의 힘 때문이란 평가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대표 김규현)는 첨단 반도체 후공정 제품 개발 및 제조에서 보여준 기술력과 경험을 인정받아 생산기획·R&D·구매 등 미국 본사의 주요 기능을 대부분 이관해 왔다. 피케이엘(대표 정수홍)은 자사를 인수한 미국 포트로닉스의 중앙 R&D센터와 고집적 반도체·LCD용 포토마스크 팹을 한국에 유치했다. 정수홍 사장은 본사 생산을 총괄하는 COO에 올랐다. 피케이엘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포트로닉스 법인 중 유일하게 LCD용 포토마스크를 생산하는 핵심 거점이다.
이창섭 ASE코리아 상무는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신속함, 목표지향적인 기업 문화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 때문에 ASE코리아는 반도체 후공정 분야의 노하우와 경영 방식, 철학 등을 중국 공장에 옮겨 심는 역할도 주문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