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플레이어`만 살아남는다

 하드웨어 유통 분야에도 특정 브랜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는 ‘멀티 벤더(multi vendor)’ 방식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원래 멀티 벤더는 수요처에서 단일 아키텍처로 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고자 주로 이용하던 방법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품 차별화가 없어지고 IT 수요는 주춤한 반면dp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수요처뿐 아니라 유통업체에서도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미 유지보수 분야는 한 개 업체가 여러 브랜드를 관리하는 흐름이며, PC는 물론이고 서버와 스토리지 쪽에서도 갈수록 브랜드에 따른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

 

 ◇짝짓기, 이제는 경쟁력 없다=여러 브랜드를 취급하는 경향이 가장 뚜렷한 쪽은 시스템 유지보수 서비스 분야다. 특정 시스템의 유지보수에 집중하던 업체가 ‘통합’ 유지보수 업체로 거듭나고 있는 것.

 싸이크론과 시스원은 이미 멀티 벤더 서비스를 표방하면서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공필호 싸이크론 사장은 “벤더는 달가워하지 않지만 수요처에는 최적의 모델”이라며 시장 개척에 자신감을 보였다.

 벤더와 총판의 짝짓기가 심한 서버와 스토리지 업체도 점차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는 추세다.

 LG엔시스·SK네트웍스 등은 이미 HP·IBM·선 제품을 모두 취급하고 있다. 정원엔시스템과 코오롱정보통신은 HP와 IBM에 로열티가 높은 협력사지만, 스토리지는 이들 업체는 물론이고 EMC 제품을 동시에 공급하고 있다. KCC정보통신도 선 제품 위주에서 한국후지쯔와 총판 계약을 한 후 후지쯔 서버 물량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세중정보기술도 HP 서버를 주로 취급해 왔으나, 최근 IBM 서버 공급에도 나섰다.

 노트북PC와 같은 소비재 제품도 상황은 마찬가지. 정원앤시스템은 하이얼의 국내 유일 총판이지만 도시바·후지쯔 등 다양한 제품을 두루 취급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다양할수록 좋다=이 같은 추세의 배경은 한마디로 위험을 분산하겠다는 목적이 크다.

 하드웨어 ‘박스’의 수익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전처럼 특정 벤더와 운명을 같이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제품 라인업 혹은 신제품이 경쟁 제품에 비해 뒤떨어질 때는 이를 감당하기도 만만치 않다.

 이는 하드웨어 중심의 색깔을 강하게 냈던 시스템 유통업체가 솔루션 공급업체와 계약을 맺는 경우에 더욱 두드러진다. 실례로 정원엔시스템은 BEA·오라클·HP 오픈뷰·레가토·시트릭스와 손잡은 상태다.

 물론 벤더의 달라진 채널 정책도 한몫 했다.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전처럼 유통업체와 암묵적으로 사업 영역과 시장을 구분하던 관행도 무너진 지 오래다. 벤더도 채널 주도의 간접판매 방식에서 직접 판매를 도입해 유통업체의 입지도 크게 좁아진 상태다.

 김흥국 정원엔시스템 사장은 “변하는 공급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고 시장 흐름에 따라 제때 공급할 수 있는 제품을 구비해 놓는 게 결국 경쟁력이며 이런 추세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유통 지형이 바뀐다=이는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먼저 그동안 유통 시장의 대세였던 소수의 총판을 전략적으로 밀어주던 정책이 바뀌고 있다. 한국IBM 등은 채널과 별도로 자체 윈백 프로그램을 가동중이다.

 협력업체에 고객을 전적으로 맡기기에는 위험 부담이 커 직판을 강화하거나 최종 사용자를 직접 관리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또 고성능 서버뿐 아니라 보급형 제품까지 ‘다이렉트 영업팀’을 강화하고 있다. 채널 사가 많았던 한국썬은 대형 고객에 대해서는 직접 영업하는 비중을 크게 높이고, 간접 영업팀과 직접 영업팀의 인력 비중도 50 대 50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그동안 다른 벤더와 계약을 맺는 것에 대해 눈치 작전을 펼쳤던 유통 업체들도 이제는 제품과 경쟁력 있는 솔루션이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

 시스템 벤더와 유통업체의 ‘힘겨루기’가 표면화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원한 우군과 적군도 없는 무한경쟁 시대가 현실화한 것이다.

 강병준·류현정기자@전자신문, bjkang·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