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미국(하)
미국의 초고속인터넷 이용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온라인게임시장도 함께 열리고 있다. 이런 환경 변화도 중요하지만, 역시 승부의 열쇠는 콘텐츠가 쥐고 있다.
로컬라이징(Localizing·현지화)을 뛰어 넘는 아메리카나이징(Americanizing·미국화)이 없으면 게임도 선택받을 수 없고, 시장 공략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한국 온라인게임이 미국시장에 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개발자 자신의 입맛이 아니라, 미국사람들의 입맛에 맞아야한다는 이야기다. 가령 한국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 대중성을 확인 받았으니, 영어만 입혀 미국시장에 서비스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다면 ‘백전백패’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엔씨소프트의 ‘길드워’나, 넥슨의 ‘메이플스토리’는 한국 온라인게임이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데 있어 좋은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지난 2002년 엔씨소프트가 스타크래프트 핵심개발자로 뭉친 개발스튜디오 ‘아레나넷’을 인수할 때만 하더라도 ‘길드워’의 현재를 점치긴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흘러 지난해 4월 ‘길드워’는 패키지 판매를 시작으로 북미·유럽지역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5개월만인 지난해 9월에 전세계 패키지 판매량이 100만장을 돌파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4월 ‘길드워2:팩션스’의 상용서비스를 시작해 지난달에는 전세계 ‘길드워’ 누적판매량이 200만장을 넘어섰다.
엔씨인터랙티브 리처드 웨일 OCR매니저는 “아시아 롤플레잉게임(RPG)은 목적지까지 향해 가면서 스스로 강해지는 재미를 많이 느끼게 하는 것과 달리, ‘길드워’는 판타지를 깔고 있으면서 단계 단계 넘어가는 패키지적 취향까지 갖고 있어 북미 이용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북미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 듯, 시작부터가 북미 게임이용자의 시각과 취향, 추구하는 재미를 완벽하게 게임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길드워’는 매년 2개 챕터씩 신작에 가까운 게임이 나올 예정이고, 곧바로 올 하반기에 ‘길드워 챕터3’가 서비스되는 등 지속적인 성공신화를 써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시티오브히어로’, ‘시티오브빌런’이 뒤를 받치고, 리처드 게리엇이 개발중인 ‘타뷸라라사’를 비롯해, 지난 3월 글로벌퍼블리싱 계약을 한 스페이스타임스튜디오가 내놓을 신작 등 엔씨소프트가 미국시장에 내놓을 타이틀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넥슨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메이플스토리’는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미국시장에서 성공한 모델이다. 지난해 말 ‘메이플스토리 글로벌서비스’란 이름으로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지역에 서비스를 시작해 1년이 채 안돼 동시접속자 5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큰 성과를 낳고 있다. 미국시장은 영어권내 최대 시장일 뿐 아니라, ‘메이플스토리’가 올리고 있는 전세계 월매출 150억원 중에서도 빠르게 비중을 늘리고 있는 곳이다.
특히 현지에 설립된 넥슨USA는 ‘메이플스토리’를 킬러콘텐츠로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아이템 판매방식의 유료화를 단행했음에도 미국을 중심으로한 영어권 동시접속자가 5만명에 달한 것은 서구 온라인게임시장에서 전례가 없는 ‘대박’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성공은 ‘메이플스토리’ 자체의 탄탄한 게임성이 가장 주효했지만, 서구인들의 기호에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게임에 접목시킨 후천적 노력도 크게 작용했다.
메이플스토리 글로벌서비스에는 ‘수퍼볼 아이템 세트’나 ‘추수감사절 이벤트’ 등과 같은 한국 서비스에는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추가됐다. 캐릭터의 피부색도 황인종 뿐 아니라 백인종이나, 검은 피부의 흑인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 등 현지 특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커다란 프로모션이나 광고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저들의 입소문을 타고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메이플스토리 글로벌서비스 담당자는 “패키지 RPG에 익숙해있던 미국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이라 하더라도 금방 하드코어 RPG에 빠져들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메이플스토리의 밝고 경쾌한 느낌과 RPG 고유의 맛이 인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넥슨은 그다지 큰 현지화 개발이 필요없는 ‘카트라이더’도 쉬운 조작법과 박진감 때문에 미국 온라인게임 라이트 유저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게임 미국시장 전파하는 두 여걸
한국 게임을 미국시장에 ‘파는’ 두 여걸이 있다. 한국인도 아니면서 한국 게임에 인생을 걸었다. 엔씨인터랙티브 도로시 퍼거슨 북미 마케팅총괄 부사장과 웹젠USA의 신디 암스트롱 대표.
두 사람 모두 미국 게임시장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한국 업체를 이전부터 잘 알지는 못했다. 한국게임의 경쟁력도 자신의 역할을 맡기 이전까지 실감하지도 못했다.
“왕성한 창작력과 아이디어,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개발에 대한 끈기는 한국인과 한국게임이 갖고 있는 커다란 강점입니다.” 도로시 부사장의 말이다. “미국에서 초고속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PC 온라인 게임 시장도 내후년까지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엔씨소프트의 북미 PC온라인게임 부문 시장점유율을 현재 18%에서 23%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에 뒤져 있던 엔씨소프트가 북미에서 이를 추월한 예를 들었다. 그는 “월별 과금기준으로 소니온라인에 비해 5∼7% 가량 많이 벌고 있다”며 “길드워, 아이온 등으로 블리자드가 지키고 있는 시장 1위도 꺾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웹젠USA를 이끌고 있는 신디 암스트롱은 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에서 온라인게임을 만들고, 시장을 익혀온 주인공이다. 그는 북미시장 온라인게임 판매방식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신디 사장은 “미국에는 패키지시장밖에 없다는 주장이 아직도 들리고 있지만 다운로드 시장은 조용히, 그러나 급속도로 성장해가고 있다”며 “확장팩의 경우 전체 매출의 75%가 다운로드에서 발생하는 등 분명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웹젠은 올해까지 3년간 참여해온 E3에 내년부터는 북미·유럽시장 코드를 분명히 맞춘다는 계획이다. 신디 사장은 “내년 E3 간판으로는 북미시장을 겨냥해 만들고 있는 ‘헉슬리’가 걸릴 것”이라며 “이와 함께 데이비드 존스와 공동 개발하고 있는 ‘APB’, X박스 버전 ‘헉슬리’ 등이 내년 E3를 통해 북미시장에 직접 공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