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 세 들어 산다는 것은 늘 힘들다. 돈을 내고 살면서도 집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내 맘대로 못 하나 밖을 수 없는 게 세입자들의 형편이다. 어쩌다 운 좋게 맘씨 좋은 주인을 만나면 그나마 편하게 생활할 수 있지만 1년이나 2년마다 새로 계약을 해야하고 집세를 올려줄 목돈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세입자들의 꿈은 내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메고 절약을 하기도 한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영상물등급위원회라는 큰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 애초 이곳은 영화나 비디오를 심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뒤늦게 게임이 추가되면서 세입자 취급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나만의 집을 갖게 됐다. 새롭게 게임물등급위원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내집을 장만하게 된 게임업계와 관계자 모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새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또 누가 이 집을 관리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가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곧 입주하게될 새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놓고 업계와 관련단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집을 지을 때 방향을 잘못 잡는다거나 골격을 잘못 만들어 놓으면 이는 다시는 고칠 수 없게 된다. 집을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다시 짓지 않은 한 말이다. 반면 내부 구조는 어느정도 바꿀 수가 있다. 이 때문에 집의 전체적인 방향과 골격을 잡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화부는 새집을 짓게 된 배경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게임등위는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만드는 집이지 게임산업을 규제한다거나 발목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느때보다 업계의 의견을 많이 반영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 게임등위를 이끌어갈 위원장과 위원들의 임명에도 정성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영등위에 있을 당시 게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위원들이 심사를 맡아 허술한 심사가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다. 또 일부 위원은 게임업체로부터 금품을 제공받는 등 도덕적으로도 문제를 노출시켰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사람 역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누가 이집의 첫 관리 책임자가 될 것인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처음으로 집을 짓고 틀을 만들어 가야 하는 만큼 게임산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맡아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의견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게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업계의 편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영등위에선 업계보다는 시민단체들의 임김이 훨씬 셌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물론 업계의 의견이 모두 옳을 순 없다. 이 때문에 적절한 통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산업을 그르칠 수 있다.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을 갖고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김병억부장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