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 전환을 앞서 이끌어야 할 주무 부처 및 기관인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정책 가닥을 못 잡고 있는 가운데 케이블TV사업자(SO·종합유선방송사)들이 ‘민간 주도의 디지털 전환’을 선언하고 나섰다. 정부 부처가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당근(셋톱박스 보조금)이나 채찍(아날로그 완료 시점 강제)을 들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발표한 셈이다.
SO협의회는 최근 오광성 한국케이블TV방송국(SO)협의회장을 비롯해 강대관 SO협의회 부회장(HCN 대표), 진헌진 티브로드 대표, 이관훈 CJ케이블넷 대표 등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디지털케이블TV 로드맵을 발표했다. 발표의 골자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방송 전환이 완료되는 시점인 2010년에 맞춰, 케이블TV 가입자의 디지털 전환을 완료하고 2011년부터 아날로그TV 송출 중단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SO협의회 로드맵=SO협의회는 지난달 2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2010년까지 모든 가입가구 디지털전환 완료 및 2011년부터 아날로그 방송 중단 △전체 케이블TV 채널의 HD 송출 △시청자 복지 중심의 SO 운용체계 구축으로 디지털 활성화 계획 지속 추진 등을 골자로 한 ‘케이블TV 디지털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아날로그 방송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기존 표준화질(SD) 중심의 단계적 디지털 전환계획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앞으로 SO업계가 HD 중심의 공격적인 디지털전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SO협의회는 우선 2010년까지 150개 HD채널을 운영한다는 계획 아래 1차로 내년까지 현재의 SD급 채널 75개를 HD 신호로 송출키로 했다. 채널당 7억원이 소요될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HD 송출설비 투자는 SO협의회 차원에서 펀드를 조성해 지원하기로 했다.
SO협의회는 이와 함께 2011년 이후에도 당분간 전체 가입자의 30%(450만 가구)가량이 아날로그 TV수상기를 사용할 것에 대비해 각 SO를 통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저가형 디지털 셋톱박스의 무료 공급에 나서기로 했다.
◇디지털방송의 한축, 케이블TV 선언=국내 디지털방송 전환은 사실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해외 미디어 시장조사기관인 MPA의 전망치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케이블TV 가입자는 2005년 말 5만여 가구(케이블TV 가입가구의 0.4%)에서 2010년에는 421만 가구(29%), 2015년엔 452만 가구(41%)에 머무른다. 현재의 비관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한 2010년 전망치로, 국내 디지털 전환이 2010년 완료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설명인 셈이다.
SO의 이번 로드맵 발표는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의 지원에 기대기보다 앞서서 방안을 제시한 데 의미가 있다. 다소 무리가 있지만 업계가 지향하는 목표치를 제시한 셈이다. 표 참조
수세적인 수치보다는 2010년 디지털 전환 완료라는 대명제를 앞세운 목표다.
SO업계는 가입자를 셋톱박스 기준으로 고급형·표준형·보급형으로 나누는데, 고급형은 HD수신에다 DVR·와이파이·홈네트워킹 등 고기능을 선택하는 경우다. 표준형은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를 수용 가능한 HD셋톱박스다. 보급형은 마지막까지 아날로그TV를 고집하는 소비자를 위한 저가형 모델이다.
따라서 이번 로드맵은 선언적 성격이 강하다. 특히 그간 같은 정책 방향을 제시치 못해온 SO업계가 디지털 전환을 목표로 한 목소리를 낸 데 의미가 있다. 그간 정통 통신 대기업과 올드미디어인 지상파방송사 양쪽에서 각각 ‘시장 혼탁을 주도하는 저가 초고속인터넷사업자’ ‘공청망을 무단 도용해 상업적으로 이용한 하급 방송사’란 폄하를 딛고 통신·방송 융합 시대의 플랫폼 사업자임을 선언한 셈이다.
이런 자신감 이면엔 통신사업자와 지상파사업자에 버금가거나 혹은 이미 넘어선 홈패스율이 있음은 물론이다. 거실을 장악한 자가 통·방시대를 얻을 것이란 단순한 논리를 SO가 추구하고 나선 셈이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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