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가 자동사냥 프로그램(일명 오토프로그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용자 편의를 위해 사용되던 오토 프로그램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게임 내 경제시스템이 붕괴되고, 이에 흥미를 잃은 유저들이 이탈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 특히 일반 보안솔루션으로 해결키 어려운 하드웨어 방식의 오토프로그램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데다 이를 주로 사용하는 중국 작업장들이 사냥터를 독점, 국내 유저들과 마찰이 잦아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오토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조작 없이 자동으로 마우스나 키보드 입력을 발생시켜 게임 내에서 스스로 사냥이나 플레이를 하는 프로그램을 통칭한다. 특히 장시간 사용하는 MMORPG 유저들 사이에선 일과 시간이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별다른 입력 장치의 조작 없이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릴 수 있어 오토프로그램이 일반화된지 오래다.
게임업계 입장에서도 일정한 트래픽과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방관해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 몇몇 인기 게임의 경우 오토 이용자만으로 매출의 절반 가까이 거둬들이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문제는 오토프로그램이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작업장용’으로 마구잡이로 악용되면서 게임시스템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경제시스템의 붕괴다. 오토를 이용한 싹쓸이 사냥으로 인해 아이템과 게임머니가 과도하게 유통됨으로써 게임내 경제시스템이 균형을 잃고 있는 것.
마치 한국은행이 화폐 발행을 남발, 돈의 가치가 급락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연히 정상적인 플레이로 사냥을 하는 유저들은 ‘투입된 노동력 대비 수익’이 줄어들어 집중력을 잃고, 게임을 이탈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더욱이 한국 온라인게임의 작업장으로 전락한 중국의 기업형 작업장들이 최근들어 최첨단 오토프로그램을 대량으로 돌려 게임내 주요 사냥터를 독식하는 등 게임 질서까지 어지럽히고 있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최근 주요 인기 MMORPG들 사이에선 오토를 사용하는 속칭 ‘짱깨’라 불리는 중국 유저들이 사냥터를 독식, 일반 유저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등 이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했다.
엔씨소프트의 한 관계자는 “중국 유저들은 온라인 게임의 커뮤니티보다 강한 캐릭터를 키워 서로 겨루는 PVP를 즐기기 때문에 오토프로그램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오토프로그램 판매사의 한 실무 관계자는 이와관련 “하루평균 900건 안팎의 문의가 들어오며 600개정도가 팔린다. 일반 유저는 10% 이하이며, 대부분 100∼200개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작업장이 대부분이다.”라고 귀띔했다.
오토프로그램이 궁극적으로 개인정보 유출 등 보다 심각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 사용자들의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배포되는 오토프로그램에 각종 백도어 프로그램을 심을 경우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금융정보 포함)가 유출될 위험성도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인터넷보안업계 한 관계자는 “오토프로그램을 생각없이 다운받을 경우 자칫 해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사용자가 직접 플레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24시간 게임이 가능해 결국 이런 사용자들이 많아지면, 서버 등 시스템에도 과부하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오토프로그램이 이처럼 특정 게임서비스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화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유통되는 단순 오토프로그램의 경우 클라이언트와 서버간의 주고받는 패킷의 변화로 어느정도 차단이 가능하다.
간단한 패치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소프트웨어 오토프로그램의 경우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 차단이 가능하다”며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보안 협력업체에 의뢰하면 어느정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동 클릭 오토 마우스나 PC에 입력 신호를 입력해 주는 하드웨어 방식의 오토프로그램의 경우라면 상황은 사뭇 다르다. 최근 아이템 거래 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하드웨어 오토는 AI(인공지능) 기술이 급진전, 게임내에서 일반 사용자와 구별하기 조차 어려워 이를 근원적으로 막을 방도가 없다는게 일선 게임업계 보안 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빛소프트의 관계자는 “하드웨어 오토는 자동 사냥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지정해 놓은 로직을 따라 플레이가 가능해 사냥 도중 마을에 가서 물약을 사기도 하고 매크로를 이용해 유저나 GM의 질문에 답변까지 할 정도”라고 밝혔다. 실제 일명 ‘매너오토’라 불리는 이들 첨단 프로그램은 주변에 다른 유저가 접근하면 사냥을 일시 중지하거나 다른 유저가 사냥하던 몬스터는 공격을 하지 않는 등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특정 온라인 게임 전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경우 게임화면의 정보를 이용해 현재 캐릭터의 체력이나 적의 위치 등을 자동 인식, 설정된 기술이나 마법 등으로 공격하고 체력이 일정치 이하로 떨어지면 마을로 자동 귀환하는 등 소위 로봇 플레이까지 구사할 정도다. 그야말로 ‘기는 보안 솔루션 위에 나는 오토’의 형국이다.이처럼 하드웨어 방식의 오토프로그램은 입력값이나 패턴이 유저의 실제 플레이와 구분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키보드나 마우스 포트(PS2)에 장착하는 과거의 형태에서 벗어나 최근엔 USB를 이용,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등 갈수록 상업적 형태를 띠고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특히 오토프로그램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게임내 경제 밸런스 붕괴로 인해 게임의 라이프사이클이 단축돼 궁극적으로 게임산업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특정 게임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다 전문화된 하드웨어 오토를 사용하는 작업장들의 경우 아이템 현금거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기 MMORPG인 ‘로한’ 서비스사 YNK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MMO게임의 특징인 유저간 경쟁에 있어 오토를 사용하지 않은 유저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지속될 경우 결국 게임사와 유저간의 신뢰 관계가 깨질 수 있다”며 “이제 이 문제는 특정 게임의 문제가 아닌 업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오토프로그램으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업계의 보안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게임산업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마이너스 요인이다. 실제 명의도용과 잇따른 해킹사건에 이어 악성 오토프로그램 등이 이슈화되면서 최근 게임업계의 보안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는 결국 온라인게임 비즈니스의 수익성 악화와 부가가치를 떨어트리는 악재로 작용, 향후 게임산업 성장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수립돼야 할 시점이다.
게임산업협회 임원재 사무국장은 “게임 프로그램의 코드 영역과 데이터 영역을 사용자 임의로 조작하는 오토프로그램 때문에 게임업체들이 추가적인 인력과 시간 및 비용을 들여 패치프로그램과 보안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해야 하는 등 부담이 막대하다”면서 “새로 제정할 게임산업진흥법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오토프로그램과 같은 게임운영을 방해하는 악성 프로그램 이용을 금지할 수 있는 조문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유저들이 오토프로그램으로 색다른 묘미를 느끼던 것은 향수에 불과하다”면서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하기 전에 정부와 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